혜천의 여행노트

'국내 여행지/국내여행 후기'에 해당되는 글 71건

  1. 2012/05/10 제비꽃 야생화가 피어있는 대구 불로동 고분군 (1)
  2. 2012/04/09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 만 발을 디딜수 있다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여행 ! (2)
  3. 2011/08/03 정이품송 비슷한 천연기념물 295호 청도 매전면 동산리 처진소나무 (13)
  4. 2011/05/26 500년된 동백나무 85그루가 꽃피우는 서천마량리 동백나무숲 (20)
  5. 2011/04/22 찾아오는 관광객 없어 외롭게 서있는 국보 장항리사지 5층석탑 (22)
  6. 2011/03/31 중국 자금성처럼 우진각지붕을 가진 수원 장안문 그 우람한 예술을 본다 (64)
  7. 2011/03/30 정조대왕과 정약용의 작품 수원화성 그 출발지 화홍문에 매료를 느끼며 (6)
  8. 2011/03/21 1박2일 엄태웅 곰인형 안고 트래킹 우승한 울릉도 행남등대 ! (10)
  9. 2011/03/15 흰두교 신앙의 대상 요니석물과 진신사리가 있는 천태산 부은암 여행! (5)
  10. 2011/03/04 풍기군수 주세봉이 안향을 위해 세운 소수서원에서 !
  11. 2011/03/03 아라가야 안라국의 옛 고분군에 함안문화가 쌓여있네! (4)
  12. 2011/03/02 가야 500년 역사의 출발지 김해 구지봉 ! (1)
  13. 2011/02/24 남해여행의 백미 ! 한동네 다른 문화로 잘 어울리는 독일마을과 물건리 방조림.
  14. 2011/02/10 고대국가 조문국이 있었던 경북의성 조문국 왕릉 (1)
  15. 2011/02/07 대한민국 건국시조 단군이후 역대 8 왕조 시조 위패 모신 천진궁 (1)
  16. 2011/01/25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어 채색하여 만든 채상을 보셨습니까? (2)
  17. 2011/01/20 해무와 어선, 갈매기의 하모니가 어우려진 일출명소 진하 명선도와 강양항 (1)
  18. 2011/01/17 허황옥이 돌배타고 입국한 진해용원 망산도와 유주암 (10)
  19. 2011/01/12 산초처럼 톡 ∼쏘는 물맛 이라하여 이름 붙여진 초정탄산약수 (1)
  20. 2011/01/11 물 맑은 옥천 술익는 냄새가 좋은 전통한옥 춘추민속관 (2)
  21. 2011/01/07 성리학의 외골수 우암 송시열선생 보길도 글씐바위 (2)
  22. 2011/01/06 안중근의사 처럼 조선시대 나라사랑한 애국자 안용복장군은 누구인가 ? (1)
  23. 2011/01/05 향수의 고장 옥천, 실개천과 청석다리가 정겨운 정지용시인 생가 (2)
  24. 2011/01/04 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돌탑으로 쌓은 피라미트왕릉 (1)
  25. 2010/12/31 내일 떠오르는해를 위하여 오늘이 있습니다 (12)
  26. 2010/12/28 김해 가락국 봉황동 황세바위에 얽힌 사랑이야기 (2)
  27. 2010/12/27 울릉도 망향봉 독도전망대에서 독도가 보입니까?
  28. 2010/12/26 2번째 방문에사 발딛고 온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 (1)
  29. 2010/12/25 울릉도 앞바다 오징어 한마리가 소주안주 오징어물회가 되기까지 (2)
  30. 2010/12/24 백제무왕의 왕비인 선화공주의 혼이 담긴 미륵사지 (8)

 

여름같은 봄날 !

 

경주시내 곳곳에서 볼수있는 고분군들보다 작은 모습의 무덤들이

대구에서도 볼수있다. 경주의 고분들은 왕들의 무덤이 많지만 이곳

대구 불로동고분군들은 이지역에 살았던 지배계층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도심속에 고분들이 있으면 산책을 하거나 도보여행을 하기 좋다.

불로동고분군들이 대구시내에 위치해있어 데구 올레 단산지 가는길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요하고 있다.

 

입구의 잘 정비된 봉분 몇기를 지나 50여m쯤 산책로를 따라

언덕위에 올라서면 웅장하고 위엄서린 경주의 왕릉과는

또다른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대·소고분이 나타난다.

 

탁트인 능성따라 고분군이 산 봉우리로 착각이 들 정도로 볼록볼록 솟아있다.

친근감드는 고분군 사이를 걸어 보며 봄날을 느껴 본다.

 

   

 

이 고분군은 팔공산의 지맥이 길게 뻗어내려와 경부 고속도로에 의해 잘리운 일대의 능선으로

볼로동 및 봉무동, 도동의 구릉에 분포하여 있는 봉토분으로 현재 210의 고분이 밀집되있다.

 

 

 

불로동 고분군(不老洞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라고 한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된곳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0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불로동 고분군 공영주차장에서 고분군을 한바퀴돌면 1.8 km걸린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봉무공원, 단산지를 거쳐 만보산책로 도보여행해봄도 좋은 봄날이다.

 

 

 

이곳 무덤에는 이름모르는 작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이면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꽃을 피워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덤으로 야생화구경까지 할수있다.

이꽃의 이름이 아마 제비꽃 아니라 생각된다..

 

 

여행지 정보

1> 여행지 : 대구 불로동고분

2>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 전화 : 053-984-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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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그냥 하나의 섬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듣고 배워온 우리영토!

             그 독도에 난생 처음발을 딛혀 본것이다.

 

             울릉도엘 세번갔었지만

             독도는  첫 상륙이니 ,

             가고 싶다고 가 지질 않는

             하늘의 하락을 받아야 발을 딛혀 볼수있는

             그런 곳이 독도인가 싶었습니다.  

                

             독도 !!!

             일본은

             이번에도 독도를 교과서에 실어 자기네 영토라고

             우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합니다.

 

             일본놈들이 탐내는 동쪽의 우리땅  

             그 귀한 곳에 발을 딛혀 보니

             과연 아름답구나 !  감개가 무량하기 까지 한 것 이였습니다.

 

             심심하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

             우리도 좀 더 확고한 대책으로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섬 하나 새들의고향 ....』
             이라는 노래 가사 처럼 
             독도여행을 계획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실제로 가는 건 더 어려운 것이 독도여행이다.

             울릉도에 도착한 뒤에도 독도가 저 앞인데
             파도가 높아 상륙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저 섬을 한바뀌 돌다가 돌아온적이 있었다.
 

            육지에서 힘들게 울릉도까지 그리고 독도까지  왔는데 

            독도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적이 있었는데 많이 아쉽드라구요.

 

           그러나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돌보셨어  독도에 발을 딛혀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럽기 때문에 하늘이 허락한 자 만이 상륙할수있는 여행지라고 하나 봅니다.

           독도에 도착하여 첫발을 디딛니 그 감동 이루 말할수 없드라구요!


           관광선을 타고온 배는
           30분 정도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며 신비의 독도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 이곳입니다.

                 독도는 동도,서도 -2개의 섬과 89개의 부속암초로 이우러져있다.

                 동도는 높이98.6m이다. 동도봉우리를 일출봉이라고 부른다.

                 산봉우리 부분이 비교적 평평하여  독도경비대와 독도등대등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동도 주위에는 독립문바위, 숫돌바위,갈매기바위등의 기암괴석이 있으며
                 유람선이 정박할수있는 접안시설이 설치되어있다.

 

 

           

                동도 접안시설에서 첫발을 딛혔지만

               관광객이 둘러 볼수있는곳는 접안시설 주위뿐이다.

               마음같았으면 독도경비대엔 못들어가도 , 독도등대도 보고 싶었고

               그곳의 희귀동식물들도 봤으면 했는데 그게 뜻대로 않죠.

 

 

 

              

                접안시설 반대편이 서도입니다.

                저곳엔 들어갈수 없죠!

 

                서도에는 어민 관련 시설이 주류를 이룬다.

                즉, 어민 숙소, 해산물 건조장, 전마선 인양기,

               급수조 등 어민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추고 있다.

                서도는 동도에 비해 면적이 다소 크고 표고가 높으며 서도 진입 계단의 경사도는 매우 가파른 급경사를 이룬다.

                 현재 서도에는 민간인 부부 1가구가 고기잡이와 해산물을 채취하며 어업인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요 볼거리는 탕건봉과 코끼리바위 등이 있다.

 

 

 

 

 

 

 

 

 

 

                < TIP > 울릉도에 대한 기본상식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독도의 2개 주요 섬 중의 동쪽 섬으로서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다.

               신라 지증왕 13년(512)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에서 출발하여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석도(石島) 등으로  불렀으며,

               1881년 이후 독도로 명명되었다.

               행정 지명으로서 독도(獨島)라는 명칭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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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청도에서 운문가는 도로 옆에 귀한 소나무 한그루가
차를 세우게 한다.  정확한 위치는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이다.

소나무가 천연기념제295호로 지정된것은  보기 힘든것이다.
국내에 이곳 동산리 처진소나무 보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바람흔적이 살고있는 부산 수영사적공원에도 수령
400년된 해송이있고, 기장군 죽성리도 오래도니소나무가 있다.
그래도 그 소나무들은 천연기념물이 아니 노송들 일 뿐이다.

이나무는 나무의 가지가 수양버들 같이 처졌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의 형태가 이러한 것은 주변의 나무에 의해 눌려 처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나무가 다른 가지에 눌려 그늘이 심하면 살수 없는 것인데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 귀한 나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 되었는지 ? 확실한 것은 다음에 알아봐야 겠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소나무 앞을 지나갈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14m 나무둘레 1.96m이며 가지폭은 동서로 10.3m 남북으로 9.1m 정도 파졌고,
 지는 거의 지면까지 쳐져있다.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정도 된것으로 보고 있다.


속리산의 정이품송 처럼 가지가 처져있다.
어째던 희귀한 소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있으니 이곳을 여행하며 지나는 분들은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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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500년동안 갯바람 맞으며 꽃을 피워온

         천년기념물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엔 아직도

         예쁜 두송이 동배꽃을 만나고 왔다.

 

         5월도 한 열흘 정도의 시간만 흐르면
         여름으로 접어 든다. 

         봄비 내리는 서해안 서천마량리 !

         서천에는 자연산 광어도미 축제가 한창이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산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회맛을 보곤 하죠. 여행이란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여행에서는 반드시 그곳의 맛집을 찾아

         미각여행도 어울어져야 제대로된 여행이된다고 밑는다.         

 

         그래서 서천여행은 신성리갈대밭, 한산모시관을 둘러보고 춘장대해수욕장을 거쳐

         마량리 동백나무숲에 올라 오력도를 내려다 보는 멋을 즐기고

         마량항과 홍원항에 들러 자연산 조개류나 자연산 광어,도미를구경하고

         입을 즐겁게 하는 여행지이기도 한 곳이 였습니다.       

      

          마량리 동백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면 500년의 정취를 느끼게 된다.

          그동백나무에 때늦은 동백 두송이가 오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담아와 그 모습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서천 8경 중의 한곳이라고 한다.

           이곳위치가 서천서면 마량리이라 일반적으로 마량리동백나무숲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500년동안 서해바다 갯바람에 시달려 키가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옆으로 누워서 자라

           밑둥이 커다랐다.    

 

             서천 화력발전소가 들어 서기전에는 참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 해수욕장은 없어지고 , 동백나무 숲 동산 앞에는 주차장이 멋있고 크게 만들어져 있다.

             자가용을 타고 가서  주차하기 쉽게 되어 있어 주차 걱정없는 곳이다.

               정상에 동백정(冬栢亭)이라는 현판을 가진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올라 숲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오력도를 감상하기도 한다.

    

         동백은 12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곳처럼 5월초순까지 피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이 5월말인데 우리가 올것이라고  이때껏 기다렸는지 동백꽃을 볼수있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 있지만, 맑은날 동백정에 올라가면 서해의 푸른바다와 낙조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수있다.

 

 

               500년을 살아온 동백나무 밑둥 입니다.

               세월의 흔적을 볼수있습니다. 갯바람에 얼마나 시달렸기에 저리도 구불구불 하게
               몸서리쳤을까 ?
     그렇게 힘겨웠던 동백나무들을 우리는 즐기고 있다니.... 

   

                   

                    동백나무 고목 밑둥에 두송이 동백꽃이 해맑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고이 담아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선을 보입니다.  예쁘죠 .....

 

 

        

           봄이 떠나가니 나, 동백도 가야하나 봅니다.

           여름의 더위가 싫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꽃잎들은 떨어져 누웠답니다.

           내년봄에 다시 봐요 하며......

 

 

        여행정보

         1> 여행지 :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2>위치 :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275-1

         3> 전화번호 : 041- 952-7999

         4> 개장시간 : 09:00 -18:00

          5> 입장료 : 성인500원     학생,어린이 : 300-200원

          6> 찾아가는 길 (교통편)

              * 자가운전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 - 국도 21호선 (춘장대방면) - 지방도607호선
                               (비인검문소에서 우회전)

          7> 인근여행지 : 춘장대해수욕장, 서천해양박물관, 홍원항, 부사방조제,마량포,
                                월하성 갯벌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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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 마량리동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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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여행지의 이른 새벽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숙소 코오롱 호텔 에서 불국사, 석굴암을 거쳐
  감포 감은사지를 보고 올 요령으로
4번 국도를
  따라 추령고개를 넘자 왼편 가파른 언덕에
  5층 석탑 2기가 보인다.

일행들이 잠시 저곳에 올라갔다가 보고 갑시다.하여
입구를 찾아 들어가는데 입구가 비포장 도로다.

계단을 올라 사지엘 당도하니
뜻밖의 힁재를 만나게 되자 , 야 ∼ 호 소리가 나왔다 !

감은사지 3층석탑 처럼 
2기의 탑이 참 아름답다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어온다.
서쪽의 5층 석탑이 잘생겼다.
동쪽의 5층석탑도 특이한 탑이다.

처음엔 왜 꼭대기 탑신들이 깨어졌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도굴꾼들이 폭약으로 사리엄구를 노리고
폭약을 터트려 파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나쁜 놈들이 이 아름다운 5층석탑을 망가트렸구나 !
생각하니 찍일놈들, 죽일놈들....소리만 반복된다.

아름다운 탑이구나 ! 생각했었는데
역시 국보236호로 지정된 보물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웠구나...   

토암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을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물은 대종천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를 지나 대왕암 근처로 흘러내린다. 

계곡의 높은 곳에 터를 닦고 중앙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이 있었다.
불상을 놓았던 배좌가 남아 있는데  아래,위 두개로 되어 있다.
             

    감은사지 3층석탑보다 규모는 적어도 서탑,동탑 2기에 새겨진 인왕상등은 참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서탑은 2층 기단에 선 5층탑인데 상하층 기단에 기둥이 4개씩 새겨져 있고 옥개받침
   역시 5단으로 정연히 조각되어 있어
 통일 신라 중기에 건립되었음을 보여준다.   

  여덟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을 만들어 네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곳에는 신장을 조각하였다.

 

 이탑의 특징은 1층 옥신석 4개의 면에 부처의 영이 드나드는 문비가 2개가 있다는 것이다. 
  문고리를 도깨비들이 물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문 양 옆에는 금강역사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둘 모두 금강저를 쥐고 있어 위엄을 보여준다. 
 

      

 

          < TIP1> 감은사지 3층석탑

 감은사지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라고 들 표현하는 석탑이다.

            

   장항리사지는 토함산 동쪽의 한 능선이 끝나는 기슭에 마련된 절터로서,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마을의 이름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 부르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금당터를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서 있는데, 1923년 도굴범에
  의해 붕괴된 것을 1932년에 복원이
 가능한 서탑만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동탑은 1층
   탑신(塔身)과 5층까지의 지붕돌만 남아있으나, 서탑은 약간 소실된 것을
  빼고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기단부는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안정감이 있으며,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을
   본떠 조각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1층 몸돌의 각 면마다
   문을 지키고 서 있는 한 쌍의 인왕상(仁王像)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고,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으며 네 귀퉁이는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경쾌함을 더하고 있다. 5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탑의 1층 몸돌 각 면에 한 쌍의 인왕상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 특이한데, 이러한
  현상은 8세기 전반기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이 탑의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전체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수법도 우수한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되 있다.

 

                           아래,위로 붙은 연꽃을 16송이 씩 조각하였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장항사지석조여래입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사지에서 출토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짐. 
         이 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 광배(光背)일부와 무릎 이하는 결실.
                   8세기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如來入像)으로 판단. 현존 높이 3m.

                                                                             <사진 출처 : 불교신문>

 

 여행정보
1> 명칭: 장항리사지 5층석탑
2> 위치: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3
3> 전화번호 054-779-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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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 월성장항리사지서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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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화홍문을 뒤로 두고  북동포루로 걸어간다,
  성곽 안의 가로등 불빛에, 또 한번 내 마음은
  서로 충돌이다.
성곽 안쪽 윗길로 걸을 것인가 ! 
 
 아님 성곽 바깥길로 걸을 것인가?   

 성곽 안쪽 윗길로 걷는것이 정석인것 같은데 ,
 성벽 바깥에서 조명빨 받은 성곽 모습을 봐야
 되는가 !
 어느쪽을 택할것인가 !
 헷갈리고 말았어요.

 걷기 좋은 성곽윗길을 택한 것이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잘못 잡은 산책로 였다는것을 알았죠.
 모든 아름다운 성곽의 사진은 성곽 외부에서 봐야 
더 아름다운 경치라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수원화성은 2번 둘러 봐야 제대로
볼수있다고,
한번은 성 외곽을 돌고 한번은 성곽따라
산책로를 걸어야 제대로 봐진다고 ....  

수원화성의 정문에 해당되는 장안문과 아름다운 화홍문
사이는 거리가 43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걷는데는
쉬운 코스  였습니다.그 사이에는 북동적대,북동치,북동포루의
 3개의 방어시설을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화홍문에서 장안문까지는 성벽외부길로 걸어야 제대로 멋진 모습을
  볼수있을것 같습니다.

  아마 수원화성에서 가장 편하게 산책할수있는 성곽길을 걸을수 있는곳이 아닌가 생각될것 입니다. 북동포루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성외부길을 걸어야 됩니다. 성벽 내부로 걸어보면 그냥 지붕이있고 문이있는 시설에 지나지 않습니다.아름다운 북동포루를 보고 흥미를
끌지 못한 사람들중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북동쪽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루는
 치성과 같이 성벽을 돌출시켜
검정 벽돌로 쌓았으며 나무 마루판을 이용 3층으로 구획하였다. 벽면에 포를 쏠수있게 구멍을 내어 화포를 두고 위에는  담장을 둘러  적을 위와 아래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북동치 ,북동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쉽게 방어하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시설물로 치의 일종으로   주변 성벽의 바닥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군의 통태와 접근을 감시하였으며 바닥에 대를 만들어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안문은 서울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알려져있다.
조선시대 많은 누각이나 궁궐등은 보통 팔작지붕인데 장안문은 중국 자금성 지붕처럼
 우진각지붕이다, 대국인 중국과 같은 기상으로 강대국을 표방하기 위해 거대하게 만든것 같다.

 수원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정조18년(1794)에 건축되었으며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뜻에서 장안문이라 하였다. 이 문은 홍예문 위에 2층의 누각을 설치하였으며, 한국전쟁때 문루가 불타고 구조물이 파괴된 것을 1976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반으로 쪼갠 독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문의 좌우에는 옹성을 공격하는 적을 격퇴할 수 있도록 만든 적대가 있으며, 이것은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시설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성곽 대문길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걸어보니  
      바라보는 경치도 좋을뿐 아니라 천정의 문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성곽외부 도로에서 바라본 장안문의 모습을 담았습니다만 제대로 가 아닙니다. 

 장안문 옆에는 유명한 보영만두 집이 있었지만 이른 새벽이라 맛 볼수는 없어, 오후 늦은 시간 다시 찾은 곳입니다.   장안문 위, 아래, 외부,내부, 멀리서 가까이서 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두운 새벽녘에는 야경사진 찍는  한가지 일만 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세세한 구경은 날 밝으면 둘러보는것이 좋을것 같은 곳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포루, 서북공심돈, 화서문으로 발길을 옮겨 보겠습니다.

             여행정보 
            1> 여행장소이름 : 수원화성 장안문 여행안내소
            2>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148-8
            3> 전화 : 031-228-2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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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부산에서 밤12시 버스를 타고  수원에 내리니
 이른 새벽 4시에 도착되었다. 어차피 자야할
 간에
움직이면 볼수있는 시간이 그 만큼
 많아지기에
서울이나 장거리 여행시에 택하는
 방법이다.

보통 새벽에 도착하면 동녘 해가 뜨기전까지 인근
목욕탕에
들렸다가 아침 해장국집을 찾아 아침을
먹는 것으로 그곳에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그 룰을 깨고 수원성의
야경을 볼
욕심으로
  택시를 타고 북수문 화홍문까지 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팔달문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그래서 여행전에 사전 준비가 필요한
것인가 봅니다.
 

 어느 불로그에서 화홍문의 야경사진에 매료된 기억 살아나 그곳으로 갔던 것이 랍니다.

 택시 기사님이 화홍문입니다. 하여 내리니 인적이라고는 느낄수 없어 약간은 으시시한
 느낌도 들었지만
카메라를 꺼냈는데 아뿔싸 ! 삼각대 부품이 하나 빠진것을 그때 알았으니,  이를 어쩌나 ! 낭감한일이 벌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담고 카메라로는 형상만
 담자는 마음을 잡고 앞뒤, 전후,좌우로 몇번을 왔다갔하며 둘러 봤지요.

 

수원에 갔으니 , 수원화성에 대하여 잠간 이야기하고 넘어 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시대 정조대왕께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인하여 뒤주속에 갖혀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것은 거의 모든분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할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2년10개월에 걸쳐 화려하고 운장한 성곽을 축성 한곳이 수원화성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는 그 수원화성을 오늘에사 걸어 봅니다.
 수원성 5.7 km동쪽 화홍문에서 서쪽 팔달문을 거쳐 출발지 화홍문까지
 4시간을 걸었습니다.  꼼꼼시리 보고 찍으며 걷다보니 4시간이 걸린 것 입니다.  다음에는 더 적은 시간으로 돌아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수원화성은 평지성 이라 걷기가 수월하고 40여개의 성 시설물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북쪽에 장안문, 남쪽에 팔달문, 서쪽에 화서문,동쪽에 창룡문, 이 4개의 관문 사이에는 적의 동태를  파악 하는 공심돈을 만들었고, 서장대,동장대 2곳을 만들어 군사를 훈련시키는 곳도 만들어 놓았어요.

 이것 저것 볼거리가 아주 많은 유적지라 1997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된 곳입니다.  

   북수문을 화홍문이라 하는 사실은 그곳 에서 알게된 사실 이였습니다.
  아치형 수문이 7개라는 사실도 그곳에 알았구요, 한컷 찍으러니 삼가대없이는 찍을수가
  없을것 같은데 무리를하여 
찍어 본다고 iso를 높이니 노이즈가 심하게 생겼지만 어쩔
  방법이 있어야죠.

 수원화성을 한바퀴 돌고나니 북수문으로 흘러 내리는 물은 방화수류정에서 흘러 온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건 나중에 
알게된 일이었지만,  분명 물길의 발원지가 있을 것인데 북수문이니  북수문의 윗쪽에 발원지가 있을것이고 남쪽에는 남수문이 있을것이다라고 생각하였는 그생각이 맞았어요. 그 물줄기가 수원천이랍니다. 

 화홍문은 석교로 7개의 홍예수문이 설치되어 있고, 7개의수문의 수문중 ,가운데 수문을
 눈여겨 보시면 양쪽 수문들보다
넓고 크게 되어있죠. 왜 일까 ?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양쪽보다는 가운데로 물이 빨리 많이흘러야 될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되었습니다.

 홍예문 위로 올라 가봤죠.
사람이 중앙으로 다닐수 있게 만들어 놓았어요. 성벽에 바싹붙여 누각을 세웠놓았으며, 
누각의 면적은 잘 모르겠지만 팔작지붕 형식이여서 아담하고 정겨운 누각 이였답니다.

 비가온 뒤 물의 양이 많으면 물보라에 무지개가 생겨 화홍문을 더 아름답게 하는데 이를 화홍관창이라하여 수원팔경에  속한다고하니 그런 광경을 한번 보고 싶어 지기도 했지만 그때 가 볼수야 없죠.
 

오른쪽 높은 언덕 조명을 받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몰라 간판을 찾아다녔다. 동북각루라고 설명되어 있다. 동북각루를 보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을것인가 , 아님 마지막에 와서 볼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왼쪽으로 돌기로 하고 마지막에 동북각루를 보기로 마음먹고 북동포루로 향했다.  내일은 북동포루에 대해 이야기 엮어 가겠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경기도 수원시 북수동 190
             2> 전화 : 031-251-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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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홍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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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20일 KBS2 1박2일에서의 곰인형 배달 레이스 프로를
보며 재치있고 재미있게 웃음을 자아 낼수 있도록
엮어 놓은 방송을 보며 여행도 마음 맞는 친구끼리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여행이면 참 좋겠다고
느겼다.

한번은 친구들과 한번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
 여행을 하며 도동에서 행남등대까지 산책한 코스라
 더 재미있게 프로를 시청하기도 했다.

 친구들과함께 할때는 엄태웅,이수근,강호동이 출발한
포항에서 션 플라어호를 타고 갔는데  파도가 높아
 고생을 했다.

포항에서 을릉도로 정기 운행하는 썬플라어호를 타고 10시 츨항 ,3시간 소요되는데 풍랑으로 4시간이 걸려 을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 도동항은 천연요새 같이 동서북쪽으로 빙∼둘러 쳐진 병풍같이 웅장하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으로 절벽을 이루고있는 아름다운 항구다.

작년에 여불단과 함께 갈때는 이승기,김종민 은지원 3명이 출발한 코스로 묵호항에 도착하니 아침때라 김종민이 배고프다며 곰인형을 등에 업고 묵호항 대합실 2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곳에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다  그곳 식당에는 메뉴가 동태찌게와 된장찌게 2종류 밖에없다.두 종류중에 골라야 한다. 묵호에서 오전10시 출발하여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다.

        


  묵호항 여객선 터미널 2층 식당에서의 아침식사 동태찌게입니다. 인근에 나가는 것이
 싫어 거의 대부분의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니 늘 북쩍북쩍 합니다. 어떤때는 줄을서서
 기다려야 아침 식사를 할 정도입니다.


 1박2일 팀들의 울릉도 행남등대 까지의 배달레이스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서울에서 번호가 적힌 큰상자를 선택해 안쪽에 있는 물건을 확인 후 최종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배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프로그램이였다. 특히 멤버들은 자신의
  물건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게임 이기도 하구.

최종목적지 울릉도까지 안전하게 배달에 성공한 멤버는 포근한 실내 취침과 1명 구제권이 보장됐다.

다른 멤버들의 물건을 모르는 상황에서 상자 속 내용물을 확인한 멤버들은 큰 곰인형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 후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각자 큰 곰인형을 어떻게 목적지까지 빼았끼지 않고 배달해야 될 지 고민을 한다.

멤버들은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중 휴게소에서 서로의 물건이 곰인형인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배신과 음모로 서로를 속이고 타협하며 긴박한 승부를 벌리는 재미있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뒤늦게 출발한 이승기는 울릉도로 입성하기 위한 관문인 묵호항에 도착했다. 이승기는 마침 먼저 항구에 도착해 깊은 잠에 빠져든 은지원을 발견, 손쉽게 그의 인형을 탈취해 탈락시켰다.

은지원과 동맹을 맺은 이승기는 김종민을 공략했다. 하지만 이승기는 막판 변심한 은지원으로 인해 탈락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이후 김종민, 이승기, 은지원은 가수라인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들과 다른 루트인 포항항에 도착한 엄태웅은 강호동, 이수근의 갖은 견제 속에도 인형을 무사히 지켜냈다. 이 과정서 멤버들은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며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울릉도에 도착한 멤버들은 최종 도착지인 행남등대까지 내달리게 됐다. 특히 이미 탈락한 멤버들도 이 레이스에 동참해 서로에게 혼란을 줬다.

특히 김종민은 시종일관 엄태웅을 속이며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듯 싶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꾸준하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엄태웅이 이날 레이스 1등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한편 이날 엄태웅은 실내취침 동반자로 이수근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내용으로 울릉도의 아름다운 해안산책로를 보며 이들이 펼치는 채치있고
 웃음 나오게하는 행동들이 1박2일을 더 재미있게 했다. 

1박2일 엄태웅 , 김종민, 이승기,은지원,이수근,강호동 6명이 펼치는 배달레이스를 보며
 또 가고싶게 만드는 프로였다. 

              
  울릉도 도동항에 여객선이 보입니다.  여객선 너머 해안선 파도 따라 산책로가 보입니다.  

 도동항은 참 경치가 좋습니다.  왼쩍으로는 행남등대가는 해안산책로가 있으며 오른편으로도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오른폄 산책로는 해돋이 감상으로 좋은곳이다. 

 
 1박2일 팀들이 곰인형 배달레이스를 펼치며 행남등대로 행하는 출발 지점으로
 도동항 입구 산책로이다.   


울릉도 관광의 절정은 행남산책로다.
도동부두 좌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가 절경이다. 자연동굴과 골짜기를 연결하는 교량
 사이로 펼쳐지는 해안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야간 조명 아래 비치는 해안산책로는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좋은 장소 인것 같다.



    
      도동항에서 얼마간 걸으면 골짜기에 용궁이라는 음식점 이있습니다.
      주로 해물을 팔고있는 집이라 눈여겨 봐두었다가 저녁에 술을 마실줄 아는 몇명이
      나오기로 한곳입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산책로 골짜기에 있는 용궁이라는 음식점에서 
     소라,자연산굴, 산오징어회로 소주와 맥주를 한잔씩 하였답니다.  


 
 이경사 해안로에선 김종민이 엄태웅에게 협상하자며 지연시키지만 순둥이 엄태웅은
 앞질러 행하니  가버린다.
 



행남산책로가 끝나는 곳에는 길이 갈라진다. 하나는 바다가로 이어지는 불과 100미터 이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등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다르면 멀리 죽도가 보이는 곳인데 저동항의  촛대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에 명당자리 인 것같다.




                       
                           죽도에는 한사람이 살고있다 한다.


해안산책로는 행남 마을과 이어진다.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살구남으로도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4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행남등대는 뱃길을 밝혀준다. 해송 사이로 이어지는 등대오솔길은 가을철에 노란 털머위 꽃이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한다. 등대에서는 저동항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안산책로 코스는 왕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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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 행남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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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가야국으로의 여행은 갈수록 재미있다.
가야국 건국 신화 구지봉 설화를 살피고
 구지가를 읽어보는 여행을 한적이 있었다. 

 그후 김수로왕릉과 봉황동고분과 대성동고분을 
 찾아가 봤으며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첫발을 디딘곳
 진해용원 망산도와 유주암을 보고
 수로왕비릉을
 다시 찾아가서 파사석탑을 보고 왔다.

 몇년전엔 장유화상이 가락국 7왕자를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성불한 칠불사를 보며 첫째왕은 누구인가 알고 싶었다.  

가야유적지를 보면 볼수록 신비의 나라라 생각된다.
가야에 신비로운 불교의 꽃이 2,000년 전에 피었다.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김해지방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을 보고  작년엔 가락국 제2대거등왕이 어머니 허황옥을 위하여 김해생림  무척산 중턱에 모은암  (母恩庵) 세워놓았다 .그곳을  찾아 등산을 한적이 있었다.

 

 지난 일요일은 가락국 제2대 거등왕이 외삼촌 장유화상의 뜻을 받들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고 기리기위해 삼랑진 안태리에 있는 천태산에 부은암(父恩庵)을 세웠다. 그곳을 다녀왔다. 그러나 부모님 (수로왕과 수로왕비 2분)과 자신을 위해 진영 봉하 자하산( 봉하산    )  자은암(子恩庵)을 세웠으나 자은암은 폐사되어 없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는데 그곳은 아직 가보질 못했다.

 
거등왕은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면서 망극하 온 부모 은덕에 보답할 길을 삼보공양에두고  海東第一 報恩 도량을 세웠든 것이다.

 가야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곳으로 알려져 있는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부은암 인근에는 1~3세기 무불상시대의 불교를 상징했던 2기의 장방형 돌무더기 스투파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부은암은 천태산에서 발원한 맑은 계곡물이 주위에 흐르고 이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시대에 어느 장군이 타고 온 말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다.

천태산은 말 그대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그래서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을 하던 
동굴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삼랑진을 공약하기 위하여 작원관지(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하였으나 의병들의 막강한 저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태산을 넘어서 오다 부은암이 있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부은암 뒤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천불보전 뒤에 있는 지름이 78cm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 돌은 인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요니(여자의 음부)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천태산 정상의 기둥바위를 남자의 남근으로 보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요니에 떨어지게 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불자들이 이곳에 와서 출산 및 득남기도를 했다고도 한다.  

유니석물이 유래부터 알아보자
이 석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로서 그 옛날 가락국의 허황후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파사석탑과 동일한 석질로서이것도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다한다.

이요니(여자의음부)는 인도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하는 성기신앙의 대상물이다.흰두교에서는 어떠한 성인도 요니를 통하여 이 세상에 출현한다하여 요니를 가장 신성시 하여 숭상하는 종교이다.

요니위에 링가(남자의성기)를 세워놓고 물을 뿌리면서 아기를 가지고 싶은 신도들이 출산및 생남기도를 하는 인도문화가 전래되어 이곳에서도많은 불자들이 기도 치성을 하였다고 전해지고있다. 이 요니석물이 있기에 2,000년의 부은암 창건연대를 고증하여 주고 있다며 소중히 여기고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와 부루나존자 사리가 봉안탑이 완성될때까지 종무소에 안치되어 있다.
   신비로운 가야 사찰여행에서 노대통령의 고향 뒷산 봉하산의 자은암을 찾아가는 여행만
  남겨두고 가야의 사찰을 찾아 돌아보고 있다.

여행정보
1> 삼랑진 안태 천태산 부은암
2>위치: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823 번지
3> 전화 : 055-353-8033  / 011-585-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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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역사 시간에 개괄적으로 배우면서 무조건 외워야 되었던
서원이름들 ,안동의  도산서원 풍기의 백운동서원,
 소수서원 이렇게 줄줄 외워야 시험에 점수를 잘 딸 수
 있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후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풍기 소수서원은 이번이
 처음이니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늦게나마
 찾아왔으니 꼼꼼시리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두루 살펴본다.

소수서원으로 들어서자 절의 위치를 알리는 당간지주가
나타난다. 당간지주는 절에 불교의식이나 행사가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다는 것인데 이상하다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곳이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있던
 곳으로 숙수사 당간지주(보물제59호) 로 세조3년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이곳 순흥지방이 큰피해를 입었는데
그영향으로 폐사 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취한대


   세조 3년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금성대군을 위시해서 순흥지방 주민의 처형으로
  그 피가 이곳까지  흘러내려와서 그 원혼의 울음소리를 달래려고 주세봉이 부임하여 
   붉은 글씨로 경자를 쓰고 제사를 지내주자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조용해졌다고 한곳이다.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출토된 유물들

  백운동서원에서 소수서원으로
조선시대 1542년 중종37년 풍기군수 주세봉이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고 1543년 중종38년 유생들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웠다.그호 1549년 명종3년 퇴계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에게 계청하자 1550년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이 서원 이름을 旣廢之學 紹而修之 ( 기폐지학 소이수지 =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한다) 에서 < 紹修 > 라 지었으며 명종 임금이 직접 < 소수서원 紹修書院> 편액을 써서 하사 하였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다. 

 

        국보 111 호 안향 영정                    

 안향 (1243-1306년) 처음 이름은 유(裕) 이며 호는 회헌,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공 , 밀직부사 부(孚)의 아들이며, 순흥의 평리촌학교에는  그의 태실지와 벼루를 씻은 세연지와 우물이 남아 있다.

1260년(원종1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288년 고려 유학제거가 되어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와 공자,주자의 화상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을 연구하었다.

1303년 에는 국하학정 김문정을 중국 강남에 보내어 공자와72 제자의 화상,문묘에 사용할 제기,악기와 육경,제자,사서,주자서등을 구해오게 하는 한편 양현고를 세워 장학사업을 펴고 섬학전을 마련하여 인재양성에 힘쓴 유학자. 그는 주자학을 전래 발전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서 충숙왕때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주세봉은 안향을 동방도학의 시조로 사문에 막대한 공을 남긴 선현이라추앙하였다.

 

                                                   보물  717 호 주세봉 영정  

주세봉 (1495-1554년)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호는 신재,본관은 상주, 시호는 문민공이다.152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교리,예빈시정을 거쳐 풍기군수로 재임중 1542년 순흥 선호동의 숙수사지에 안향의 사당을 건립하고 이듬해에는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본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당시 산삼공납의 민폐를 덜어주기 위히여 가삼재배의 주산지가 되었다. 즉 풍기인삼이되었다..

 

 

 

         탁영지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겸암 류운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할때 연못을 파고
       대를 쌓았던 곳.

  소수서원이 안동의 도산서원보다야 크겠는가 한생각이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한 곳이었다. 소수서원 자체만 들러보아도 몇시간이 걸릴것 같으며 사료관,
  소수박물관그리고 이곳 선비촌을 둘러볼려면 하루를 잡아야  제대로 볼수있는 역사깊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여행정보
   1>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 소수서원) 
    2>전화 :   전화054-634-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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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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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경남 함안을 아십니까?
            함안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은 함안 조(趙)씨 
            본향이 아닐까 하는것 과
  아라가야가
           있었던지역이 함안이라는것 외에는 많이 알지를
           못 합니다. 

            요즘 들어 유명해진 함안 수박 이 유명합니다.
            그래서 세가지 정도를 알고있는 지역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수없이 지나다녔는데
            특별한 것이 없다고 믿어 왔는데.....  
            학교때 고대사 공부할때 아라가야가 함안을
            위주로 있었던  나라인것
정도였습니다.

 

           아무볼것 없는 곳이라 알고있는 곳에
           안라국(= 아라가야) 박물관이 있다는것을 우연히 알게되어
          그 박물관을 찾아 나서 보았습니다. 

           함안은 마산과 진주 중간에 위치한 들판에 자리잡은 
           지방자치단체이며,
 남해안고속도롤 함안 IC에서 진입하면
          바로 도착됩니다.
마산에서 군북가는 길목에 자리잡고있어
          교통은 꽨찬은 편이기도 합니다.
                            

 

 

          함안지역에서는 아라가야를 안라국(安羅國) 이라고 부르고 있다.
       함안에서는 안라국이었는데 "아라가야"라는 이름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럼 이이야기를 역사공부한다는 의미에서 좀더 상세히 들어보기로 한것을
      엮어봅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안야국(安耶國)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안야국이 안라국이 되기 이전의
소국단계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3세기경 있었던 포상팔국 전쟁,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남쪽정벌에서는 잘 극복하면서
      정치적 발전을 했다고 한다.
안라국은 함안지역뿐아니라 마산,진동,의령,진주일부까지
     영역을 가졌다고하며 , 가야 여러나라 가운데 주도적
 역활을 하는 후기 가야의 중심국으로
     활동했지만,
 561년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말았다.

 

           

 함안군청에서 진동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니 함안박물관이라는 표지석이 크게 서있어 찾기가 쉽다.  함안에는 박물관이 생긴 지도 2003년이었으니 10년도 안되는 걸음마 단계의 박물괸이라고 밖에 볼수없다.

  함안 도항리 고분군들 중심지에 서있다.
 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유물부터 근대유물까지 전시되어있다. 

 

                                  선사시대 고인돌들도 보인다.

 

           수레바퀴모양토기 
           가야읍 도항리 4호고분군에서  5세기경으로 추정되는 < 수레바퀴모양토기 >

             안라국 사람들이 무덤에 수레바퀴 모양의 토기를 만들어 넣은 뜻은 죽은자의 넋이
             저승으로 편히 갈수있기를
   바라는것에 있을것이다.

 

               문양이 새겨진 뚜껑 ( 무늬장식뚜껑 : 함안 문외리출토)

 

 

     5세기 경유물, 도항리 13호고분에서 출토된 < 미늘쇠>

 

               불꽃무늬토기
                5-6세기경 함안지역의 특징적인 토기.
                대각의 투창형태가 불꽃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불꽃무늬토기에는
                굽다리접시, 굽다리항아리,
 그릇받침등이 있는데 , 독특한 투창모양으로 인하여 
                 안라국(아라가야)의 영역과 대외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5세기경의 이형 토끼로 함안 도항리39호분에서 출토

 

 

     고분의 대부분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600m의 주능선과 서쪽으로 뻗은 여덟갈래의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안라국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
   그 아래 1,000여기의 중소형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에서 공(工)자모양의 굽다리접시, 불꽃모양의 창을낸 굽다리접시는 안라국이 여러
   가야중에서
    독특한 문화를 가진 세력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의 말산(末山)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말산은
  말이산(마리산) 즉 머리산이었다고 한다.

 김해 금관가야, 고령 대가야, 함안 안라국(아라가야)를 둘러 보며 멸망한 나라인
가야 역사 유적지 하나 하나에 대해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
 우리가 살고있는 경남권의 가야에 대해서 앞으로 더 많이 답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 이었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함안군 함안읍 도항리 748번지
          2. 전화 : 055- 580- 3902
          3.참고사항 
                   * 월요일휴관, 11월-2월까지 09시부터 17시까지 개관. 입장료 500원. 
          4. 함안박물관  http:// museum.haman.go.kr

          5.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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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 함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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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노무현대통령의 고향  김해 !
 가락국의 수도였던 김해 !
 김수로왕이 태어난곳 김해 구지봉
 그 설화가 깃든 김해 구산동 여행은
 가야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한곳이다. 
 
 구지봉 ! 
구지봉은 가야 500년 역사의 출발지인 동시에 
고대 국문학상 중요한 서사시인 " 구지가"가 탄생한 
역사 깊은 곳이다.

수로왕비릉 좌측 산자락에 위치한 구지봉에
오르며
학교 다닐때 고문시간 그렇게도 외웠던 구지가를 생각한다.  .




           서기 42년 신라 유리왕19 년 삼월 삼짓날 가락국의 수도 김해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해 마을 북쪽 구지봉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마을 사람2-300명이
         구지봉에 모이니 사람소리가 나는듯한데 그 모습이 보이질 않고 소리만 들려왔다.

        " 여기사람이 있느냐? 
         구간 (九干)인 아홉마을  우두머리들이 " 예, 저희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 여기가 어딘가 ?" 하고 물으매 " 구지봉입니다."하고 대답한다.

        "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기를 ,그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하여 임금이 되라 하였으므로
          이곳에 왔으니 너희들은 구지봉의 흙을 파면서
         거북아!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라 . 그 것이 곧 너희들이 대왕을 
맞이하는 일이 될것이다." 하셨다. 

         아홉 마을 우두머리들이 그 말과 같이 모두 기뻐하며 가무하였다.  


       얼마후 자주색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에는 붉은 금합(金盒)이
      쌓여 있었다.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6개의 황금알이 있었다. 그날밤을 지나 이튿날 새벽에
      합을 열어보니 여섯동자가 나타났다. 나날이 자라 10여일 지나서 키가 9척이나 되었으니
      이는 은나라의 천을 같고, 그 얼굴이 용과 같았음은 한나라의고조와 같고,눈썹의 팔채는
      당의 요임금과 같았으며, 눈에 동자가 둘있음은 우,순임금과 같았다 .

       그달 보름날에 즉위하였는데 처음 탄강하였다하여  수로 (首露)라하고 나라를 대가야
       또는 대가락국 이라 일컬었으며 6가야의 하나였다. 나머지 알에서 탄강한 분들이 나머지
        5가야의 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출전 : 삼국유사 2권 가락국기 ) 

      가야사의 구지봉에 대해서는 설화적인 성격이므로 삼국유사를 인용하지 않고는 좋은
      자료가  없어 삼국유사를 인용했다. 





                                                     한석봉의 글씨로 새겨진 구지봉석



                김수로왕 표준영정 으로 만장대 해은사에 있는 수로왕 영정과  차이가 많다. 

       구지가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한 민중들의 노래임을 알수있는 역사 이야기이다.  
       고등학교때 시험 나올것이라고 많이도 외웠던 구지가(龜旨歌) 였는데
       지금에는 좋아서
찾아다니다 보니 외우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저절로 익혀진다는 
옛말을 알것 같다.  
       
          여행정보
       1.주소 : 경남 김해시 구산동 산81-2 (구지봉)
        2.전화 : 055-331-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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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 북부동 | 김해구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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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지난해  여름 보물섬 남해 독일마을 과 그 인근에 있는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둘러보기로 하고 도착하니 오후2시였다.

독일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로 보이는 바닷가의 숲으로
둘러 쌓인 곳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다.
 
한동네 다른 문화가 이색적이다
 한곳은 서구 스타일 그리고 한곳은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 ,
그것도 같은 남해 물건리 가까운 거리에 있다




 독일마을은  탤랜트 한예슬과 오지호 주연 "환상의커플" 촬영지로도 유명한 남해 독일 마을이다.  Hier ist ein Deutsches dorf. 여기는 독일 마을 입니다 라고 간판이 달려 있다.
 
1960-1975년 사이에 간호사와 광부로 머나먼 이국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 근대화에 큰 역활을 담당했던 우리 교포들이 고국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게 정착할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독일교포 정착 마을 이다.
 
원자재는 독일에서 수입하여 건축하고 독일 생활방식을 건축하고 , 생활 양식도 독일 식으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 민박도 되고 펜션도 있다. 요즈음 젊은 분들은 그때의 사정을 잘 모를
것이지만 독일로간 그때의 한국사정은 지금의 몽골이나 중국시골의 생활상이었으니 독일로간 간호사와 광부들의 근대화 에대한 공을 인정해야 할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차관 얻으러 가 이네들을 만나서 손잡고 울었다하지 않는가.
그사람들이 고국에 살고 싶어 여기 와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구경가지만 그사람들은
 고국의 생활 터전이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위치 해있으며
 300년된 고목나무 숲이 아름다운 남해 방조어부림이다.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준다고 하여 방풍림이라고도 부르고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분 ,
조수 해일을 막아 준다하여 방조림이라 부른다.
 그리고 숲의 초록빛으로 물고기떼를 불러 들인다하여 어부림이라고도 부른다
.

 

이곳엔 천연기념물 150호로 지정된 후박나무 푸조나무등 100여종 1만그루의 나무 숲이
 몽돌 백사장을 따라 반달 모양으로 조성되어있다.
 
안가본 사람은 그 좋음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
얼마나 좋았으면 탤런트 박완숙씨가 이곳에 별장을 지어 생할하고 있을까?
이번 따뜻한 봄날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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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탑리리,학미리 일원에
세워졌던 삼한시대 진한에 소속된 조그마한 고대국가
조문국이 있었던 의성.

의성에 삼한시대의 부족국가가 있었으며  그 흔적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볼수있었다.
 
이곳에 와서 역사성을 들어보니 삼국사기에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소국으로  성립되었으며, 경덕왕릉(景德王陵)을
 비롯하여 250여기의 릉(陵)이 분포되어 있으며 기원전
124년 초대임금  용왕의 등극부터 서기 245년까지 21대
 369년간 조문국의 왕력 (王歷)이다고 한다..

 의성이 도읍지였으며 신라 벌휴왕 2년 (185년)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60년대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경희대,경북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앞트기식 내지 굴식돌방무덤과 변형
 돌무지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신라토기 가운데
지역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의성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금동관,금동관장식품,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마구류등이 있다. 현재이 유물들은 
대구대박물관과 경북대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조문국 고분 입구

 

 

 


 조문국은 철제무기가 발달된 나라이며  마구류등이 발견된것으로 보아 ,
  추측컨데 기마부대가 강하지 않았을까?


          

  의성땅에서 번성하던 고대국가 조문국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기 위하여 계속 발굴조사중이며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일원 조문초등학교 부지내에 지하1층,지상2층 규모의 조문국 박물관을 착공 완공 계획이라 한다. 

경주 고분군들엔 많은 사람들이 사철 찾아와서 역사를 체험하며 역사공부도 하고, 산책도하며,
즐겨찾는 곳이되고 있는것을  볼때  , 이곳 조문국 고분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옛 부족국가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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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설날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밀양엘 다녀왔다. 
부산에서 가까운 밀양은 보고 배울 것이 많은 문화도시다.
관혼상제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 일까?

밀양 영남루 바로 앞에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있고 이곳에서 매년 제례를 지낸다니
종교를 떠나 참 좋은 일이라 생각되고 또 영원히 보존할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곳이 천진궁이였다.

천진궁은 1665년 현종6년에 건립되었으며 이 건물은
역대 왕조 시조 위패를 모신 공진관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으나,
1722년 경종2년부터 공진관 대신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의 기능을 하던 곳이었다 한다.

일제시대에는 헌병대가 이 건물을 감옥으로 사용했으며 , 이는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역대 왕들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민족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할수 있는 역사 현장이기도 한곳이다
.  


      영남루에서 마당 건너 앞을 보면 만덕문이 보인다.
      만덕문을 들어서면 천군궁 현판을 가진 건물이 바로 역대 왕조의 시조를 모신 천진궁이다.
   

      

     
   1952년 단군 봉안회가 생겨 천진궁의 남쪽을 향해 중앙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왼쪽 벽면에 부여시조왕, 고구려 시조왕,가야시조왕,과 고려태조의 위패를 모시고
   오른쪽 벽면에 신라시조왕,백제시조왕,그리고 발해고왕 마지막에 조선 태조의 위패
   모셔져 있다. 매년 봄,가을 로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각시조 위패에는 각왕조 시조 王位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歷(기간)  그리고 외쪽에는 
        合 10년 이렇게 위패가 만들어 있다.    예로들면 가락시조왕위 (駕洛始祖王位)
        오른쪽엔 歷491年 오른쪽엔 合10王으로되어있다 가락국은 491년 존속했으며
          10명의 왕이 계셨다는 뜻입니다.
                       
 
 


                                   석상 과 비문 
           * 비문- 삼신제왕 ( 삼신할미) , 칠원성군(북두칠성), 태산노군 ( 노자를 지칭)
           * 석상- 단군왕검이 아닌가 싶다
.
 
      
      이렇게 대한민국의 건국시조 단군으로부터
      부여국,갸야 , 백제, 고구려,신라 발해,고려 그리고 조선 이 8 왕조가 우리의 역사이며
      하나라도 잊어버리고 등한시 하면 우리의 역사는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은 좀더 활성화하여 역사교육 장소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밀양시 내일동 40번지 (밀양영남루)
     2. 전화 : 055-359-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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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 밀양영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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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남도 지방 중에서 대나무가 제일 많은 곳이 담양이다.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죽 제품이 발달되어 

옛부터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진곳이기도 하다.

푸른대숲에 하얗게 내려 앉은 눈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이
 채상(彩箱)을 만드는곳 이였다.
 
채상이라는게 뭔지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나도 나이 많은 축에 들지만 처음엔 채상이 뭔지 몰랐다.
 건물 입구에서 현품을 보니 흔히 시골에서 본 대나무 고리짝이
 진화된 것이라 생각 되어졌다.
대나무를 재료로 하여 엮어 짠 고리의 일종이라고 보면 맞을것이다.

입구에 대나무 고리짝 하나가
  유리상자에 넣어져  보관되는
것을 보니 그 원조가 확실한것 같다.        

  담양죽제품시장은 1980년 프라스틱용품이 생활에 쓰여지기 이전약 300 년동안 우리선조들과
 함께해온 우리의 귀중품 보관 박스였다고하면 맞을련지,
조선시대에는 중국일본 몽고등에서도 알아주는 동양최대의 죽물시장이였다고 하지요. 90년대부터는 값싼 중국제푼이 들어오면서 그
나마 명맥을 이어오던
죽물제품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합니다..           

  채상 (彩箱 ) 이란 글 그대로 해석하면 색을입힌 상자를 말하는데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어 빨강, 노랑, 파랑 색깔을 채색하여 짜만든 상자를
 채상이라  한다.

채상(彩箱)이란...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어 여러 색깔로 물드려 짜 만든 것을 채상이라 한다.

보편적으로 상자형 제품이 많으나 반짇고리, 베게, 부채, 방침, 색실상자, 보석함 등 여러가지 무늬의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진다. 원래는 채죽상자(彩竹箱子)로 불렸으나 줄여진 이름이다.


채상의 역사(歷史)
고대 죽제품의 기록은 후한서(後漢書)에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경남 창원시 다호리무덤(기원전 1~2세기) 에서 죽협이 출토되었고 평안남도 대동군 남정리의 낙랑유적 (기원후 1~3세기) 에서 씨대를 세우고 댓살을 엮어나가는 바구니짜기와 동일기법의 채화칠협(彩畵漆篋)이 발견 되었다. 이러한 죽제품은 주거생활에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으나 플라스틱 제품의 발달로 차츰 수요가 줄어들어 민속예능이 사라지고 있다.

 채상장 인간문화재 전시관이 위치한 담양군은 대나무제품이 가장 발달한 곳으로 이곳 출신 서한규옹이 중요무형문화재 제 53호 채상장(1987년 1월 5일 지정)으로 지정되어 장인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채상전수관)


 

채상의 제작과정(過程) 및 설명(設明)

대나무 채취 -> 물담그기,대다듬기,쪼개기,훑기 -> 염색하기 -> 채상짜기로 크게 구별된다.

1)대나무 채취(採取)
   채상을 만드는데 쓰이는 왕대나무는 키가 크고 곧게자란 2~3년생이 적합하다.
   대는 황토밭에서 식생한 것으로 동지 무렵에 채취한다.
 
2)대나무 물담그기, 다듬기, 쪼개기, 훑기
   채취한 대의 마디를 잘 다듬어서 만들 제품의 크기에 맞추어 쪼갠다.
  작업은 대나무가 마르기 전에 작업하여야 하고 대나무 상태에 따라 물붙이기, 죽뜨기,
  조름빼기, 대오리 훑기가 끝나면 두께 0.1~0.2mm로 얇아지고 내피와 외피로 구분 된다.
 
3)염색(染色)하기
   채상의 특징은 아름다운 색상과 문양에 있으므로 염색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 전통염색 기법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하는 천연염색으로 하여야 하나 재료부족
   으로 일부는 화학염료를 사용하고 있다. 염색으로는 노란색 계열의 치자물, 자주색
   계열의 마젠다와 소목을 사용하며 녹색계열의 화학염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최근에 쑥과
   잇꽃(홍화)의 천연염료를 사용하고 있다.
 
4) 채상(彩箱)짜기
   상자를 짜기 위해 씨대와 날대를 놓고 바닥잡기를 한 다음 문양에 맞춰 세오리뜨기로
   넣으면서 대오리를 넣고  문양의 짜임을 생각 하며 작업해야 한다.
    어느정도 짜지면 태대를 넣고 접기하는 것을 여러번하여 상자짜기를 한다. 작업이
    완료되면 마무리 손질하여 상품화 한다.
                                                                                              (출처 : 채상전수관)

 이 상자는 요즈음은 아니지만,
 처녀의 혼수감을 담거나 여인의 받짇고리 로 사용되거나
옛 선비들의 궁중야근 때 입을 옷릉 담아 가는데 쓰였다고 도 한다.
임금이 승하 할때 서울로 봉물을 담아 보내는 데도 사용했다고 한다. 

 

위(上) 상자는 예부터 쓰든 대나무 고리짝     (下) 아래가 요즈음 사용되는 채상    

서한규 옹과 딸 서정민씨 두명이 삼합 하나 만드는데  보름정도 걸리는데 이 삼합 하나가 200만원 정도 하니 보통사람은  잘사지 않고 부자들은 간혹 사지만  이 채상에 대해서 아는 대학교수들이 사간다고 한다.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어 색을 입힌 상태 

        편죽은 10-20가닥의 대오리를 완손 바닥에 펴서 쥐고 오른손으로는 준비된
       채색 대오리를 1-5가닥씩
  걸러가며 엮는다고 한다.

      담양에서 죽물과 함께 생을 살아온  서한규옹은 1930년 벌뫼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죽물을 다루는데 눈썰미가   남달랐고 손재주가 뛰어 났다. 지금까지
    서한규옹은
 1982년 제7회 전승공예 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수상한바 
    있고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었다.

  여행정보
         담양군(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연락처 : 061)380-3154 
         채상장 전수관(061-38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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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31국도 일부 구간, 부산해운대에서 울산까지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너무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라는 것은
별도로 설명을 하지않아도   모든분들이 인정하는 곳이랍니다.

이름난곳만 대충 열거 해봐도 아-하실겁니다.
송정해수욕장,기장대변항, 칠암아나고횟촌,죽성리,
일광해수욕장, 진하 명선도와강양항, 간절곶등등 아주많아요.

 
진하해수욕장은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풍광이 좋은곳이
였어 울산이나 부산사람들이  자주 찾는곳이죠.
울산시내에서 20분, 부산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휑하니 다녀올수있는거리입니다.

근래에 가지 못한사이 진하와 강양항사이 아름다운 다리가 놓여
볼거리를 한가지 추가한 곳입니다.


진하해수욕장은 울산에서 동남쪽으로 24km거리에 있는 길이 1km,
폭은 300m의 해수욕장으로 수심이 얕고, 넓은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이 장관이며
앞바다에는 명선도가 있어 주변의 소나무 숲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산 해운대,송정 일광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해수욕장으로 96,000평방미터의
 넓은 백사장이 돋보이고, 사진작가, 윈드 서핑 애호가, 바다 낚시꾼 등 연중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합니다.   

          


강양항은 울산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에 위치하고있으며 ,명선도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에 있습니다. 진하해수욕장 은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 307-2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야강 또한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에 있어서 강양항으로 흘러내리는 강입니다.




 
     강양항 앞 마을의 모습과 회야강하구 강양항 앞바다에 설치되어 있는 등대 또한 멋있습니다.





  여름철에 매미가 많이 울었으므로 ‘우는 매미의 섬’이라는 뜻에서 명선도(鳴蟬島)라고 불렸다는 설도 있으나 예전부터 ‘이름난 신선의 섬’이라는 뜻의 명선도(名仙島)나 ‘이름난 산의 섬’이라는 의미의 명산도(名山島)라고도 불려왔던 만큼 그 유래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명선도의 일출을 찍지 못했습니다.  

명선도, 해무와 어선, 갈매기의 하모니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의 명선도는 맞은편의 강양항이나 진하해수욕장에서 보면 바다를 향해 머리를 삐쭉 내민 거북처럼 보이는 작은 섬이다. 겨울철에는 이곳 바다에 해무가 자주 발생해 소나무가 돌출한 명선도와 갯바위, 파도, 멸치잡이 어선, 태양이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바닷물이 끓어오르듯 해무 자욱한 새벽 바다에는 귀항하는 멸치잡이 배를 따라 갈매기들이 어지럽게 날아든다. 하늘과 구름은 붉게 물들고 바다에는 배와 어부, 갈매기들이 검은 실루엣을 드러내며 황홀한 장면을 연출할때 한컷 찍는기분이 어떨까요?


여행정보

1> 위    치 :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2> 전    화 : 울산광역시 울주군 문화공보실(052-229-7118)
                  울산시 문화공보과052-229-7076
                  울산시 관광과  관광과 052-229-3852
3> 홈페이지 : (울주군) http://www.ulju.ulsan.kr
4>찾아가는 길  : 1) 경부고속도로 언양 IC -> 울산->남부순환도로->14번, 31번 국도 이용
                        2) 부산에서 31번국도 또는 14번국도 ->남창에서 1028지방도 이용
                        3) 울산에서 온산공단을 지나서 서생면 방향으로 갈 수 있고,
                            해운대 방향 14번 국도를 이용하여 울산온천 방향으로 진입하여 갈 수 있다.

5>현지교통 : 1) 울산공항에서 1402, 412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1715, 715, 405번으로
                          갈아타고 진하 하차          
                   2) 울산역에서 1104, 1114, 1401, 307, 317, 327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1715, 715, 405번으로 갈아타고 진하 하차
                   3)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715, 715번을 타고 진하에서 하차

 6>현지숙박 : 민박/문의-울산시수협 052-268-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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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2,000년전 외국인이 첫 입국한 항구 진해용원 포구.

지금은 생대구로 유명한곳 진해용원이지만
머나먼 인도땅에서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기위해
돌배를 타고 도착한 가야의 땅 용원입니다.

지금은 조그만 포구이지만 2,000년전에는
외국인이 첫 입국한곳이니 국제항이라할수있죠.

몇십년전부터 수없이 진해용원을 다녔었는데
역사의 눈이 없어 지금껏 지나친곳 이였습니다.

진해용원 버스정류장 옆에 
유주정과 망산도가 있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보면 망산도의 지명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곳 진해 용원이 유서깊은 곳이라해도 지나칠 것이 없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수로왕이 왕이 된지 7년이 지나도록 왕비가 없자 신하들이 왕비를 맞이할것을 청하였는데,
수로왕은 왕비는 하늘이 정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유천간을 현 진해시 용원동 앞바다에 있는
 작은섬으로 보내 기다리게 했는데, 그섬이 지금의 망산도라고 합니다.

어느날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과 기를 단 돌로 만든 배가 허왕후 일해을 태우고
나타나자 수로왕이 직접 나와 허황후를 맞이하여 혼례를 올리고 150세가 넘도록 장수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허황후 일행이 타고 온 돌배가 바닷속으로 뒤집혔는데, 그곳이 바로 망산도에서 동북쪽으로 70m 쯤되는 곳에 있는 바위섬인 유주암이라고 합니다.
 
망산도와 유쥬암은 삼국유사와 신동국여지승람 김해돟부조에 관련 문헌 기록이 전하는 전승기념장소로 1988년부터 경남기념물 제89호로 지정보존관리하여왔으며, 학실한 문헌기록이 전해지는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입니다.

또 망산도에는 패각과 동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제작된것으로 도질제및 연질토기 파편이 확인되고 있으며,이로 미루어보아 부산지역에서 보기드문 제사유적일 가능성이 높다는점에서 고고학적으로도 매우가치있는 문화재로 평가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곳이라면서 딸랑 안내간판 한만 있을뿐 , 관리관청은 말뿐인 관리를 하고 있는것 같이 보입니다.  2007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경상남도에서 부산광역시로 편입된곳이라고 안내간판에 기록해두었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안아 보였습니다.

유주암은 어디있는지, 위치도 없고, 70m 정도 떨어져있는곳의 바위섬이 유주암 같으나 아무른
안내판도 없었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으면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알차게 관리를
 했으면 좋을듯 합니다.      

      진해용원 어시장입니다. 이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마을의 초입 바닷가에 망산도가
      있습니다.

 유주정이라는 정자옆에 부산과 진해,마산,창원으로 운행되는 버스들의 종착 정류소입니다.
 정류소 앞 유주정이있고, 그 앞 바닷가에 망산도가 있습니다.

     망산도는 조그만 섬입니다. 썰물때라 걸어서 들어갈수있습니다. 



    이곳의 바위들은 다른곳에 있는 바위와좀다른 느낌이였습니다. 바위가 거북등처럼 무늬가
나있습니다.

       예전에는 조그만 암자가 하나있었다는데 지금은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망산도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조그만 바위가 보입니다. 그곳이 돌배가 뒤집혔다는 유주암
  입니다. 그곳까지 가보니 바위 2개로 이루어진곳 유주암이였습니다.

 이곳 유주암도 망산도 바위와 같이 거북등처럼 거미줄같이 갈라져있는것을 볼때
 망산도와 같은 재질이 분명하다고 할수있었습니다.


 인근에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시행하고있는 공사가 한창이고, 가덕도 부산신항 컨테이너
 하치 장비들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가야국 왕비가 이곳에 첫발을 딛고 내린 유서 깊은곳 이지만 웬지 초라해보였으나  자연상태
그대로의 모습도 좋아 보였습니다. 돈을 들여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더덕더덕 붙여 놓는
것보다 나을수 있다고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진해용원 생대구를 사려 오거나,  시원한 대구탕을 드시가면  김해허씨 시조 허황옥이 처음 
발을 딛고 가야땅에 입국한 역사적인 장소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행정보 
 1>위치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산188번지 (망산도)
 2>전화 :  051-970-4000
             강서구청 문화공보담당 051-970-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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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율리 휴양림 펜션에서 자고 아침일찍 진천 보탑사를
향하는 길목  청원 초정약수터가 눈에 들어 잠시
들러보기로 하고 차를 세웠다. 전날 저녁에도 
천연 사이다를 마셨는데 하면서...내렸다.

초정 (산초나무 우물 井)
이라는 명칭도 알고
보니이곳의 물맛이 후추처럼 톡∼ 쏘는  맛이라는 뜻이다.


옛 선조들은 지명을 지을때도 특성과특색에 맞게 지었다는
사실이놀랍다. 물맛이 산초처럼 톡 ∼ 쏘는맛에 연유하여
초정리라는 이름을 붙인것 같다.

초정약수물을 사용하여 목욕탕으로도 쓰고 ,천연사이다를
생산하여
팔기도 하는곳으로 건물 옆에 일반시민이
 이용하도록 수도꼭지를
설치해두었다.
 

 

충북청원 초정약수는 세계3대 광천수 중 하나로 약600년전에 발견되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동국여지승람에 " 초정약수는 청주고을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조와 
 세종대왕이 일찍이 이곳에 행차하여 머물면서
병을 치료 했다고 한다. 

 

 




지나다가 맛본 이곳은, 원탕근처 초정리 여러 식당에서 약수를 끌어 올려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톡쏘는 맛은 그대로 인데 주위가 깨끗하지를 못한것이 좀 그렇다. 수질검사 성적서 붙여 놓고 있긴한데

이곳에는
초정 약수를 알리는 동상이 세워져 초정약수 문화관광 중심지로 탈바꿈 시키려나 보다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일제때 인 1912년 일본인이 채취하여 청량음료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
         지금은 기업에서 천연사이다.
천연탄산수미네랄워터 등을 만들어 시판하고 있다. 



 초정약수는 고혈압,당뇨병,위장병,피부병,안질 등에 효험이 있는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약수의 성분은 단순탄산
과 중탄산이 함유되어있고 각종 미네랄이온과 천연탄산까스가
 풍부한 탄산수라 한다,

         세포를 자극하여 몸의 기능을 활성화 하고 혈압을 정상화시키는데 중요한 구실을 히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정약수의 1일 권장 음용가능량을 1000mml정도 마시면
         좋다고 한다 .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칠수도 있다고 한다 . 약수라고 다 좋은것은 아니다.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고 했지요.
 

                 탄산수의 매력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들, 또는 환자, 또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탄산을 원하되 첨가물이 들어간 음료보다는 생수로

즐기고 싶을 때 많이 선택하는 편입니다.

  

여행정보

1>위치 : 충북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

2>문의 : 청원군 내수읍 사무소(043-214-0601)

3>교통안내 : 1) 청주 -> 증평방면 36번국도 -> 마산리 -> 511번 지방도 -> 초정리
                    2) 중부고속도로 증평IC->용계리 -> 내수리 -> 511번 지방도 -> 초정약수터
                          현지교통 : 내수읍에서 초정리까지 마을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 15분 소요.
                    3)  현지숙박 : 초정약수스파텔(043-210-9900) 및 기타 여관 다수. 

4> 주변명소 : 운보김기창화백 생가,  구녀성, 옥화9경, 손병희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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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옥천읍 문정리 구읍 정지용 생가 가까운 곳에 
 옛 소재지로 관아와 향교가 있었고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이다.

 
전통 한옥 형태의 주택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운
  가운데 춘추민속관이 있어 좋았다.

 춘추민속관은 향토시인 정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1760년(영조 36년)에 지어져 약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한옥(55칸)에 농경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춘추민속관이 있는옥천구읍은 1900년대 초까지
충청북도 옥천의 중심지였었다. 옥천음축향1리와 3리, 상계,하계,문정리,교동리등 5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1900년대 초 주민들의 반대로 역이들어서지 못한것이 쇠퇴의 길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1905년 현재의 옥천읍내에 옥천역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주요시설과 인구가 밀집하니
 중심지가 되었고, 옥천구읍은 말그대로 구읍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옥천구읍에 있는 춘추민속관이라고 합니다. 

 

        이 고택의 상량문에는 숭정기원후사병진십이월 (1856년 12월 -철종7년)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숭정(崇禎) 은
중국 명나라 말기 황제 의종의 연호로 건축연도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전해 오는 말로는 흥선대원군이 자주 머물렀다고
 하며 괴정 오상규님이 건축하고
           그후손 오윤목(재정국장)국장이 증축한 것으로 밝혀져 귀중한 민속자료로 그 가치를
 
인증받아 복원되어 옛 모습을 되살리게 되었다.

         본래 규모는 알수 없으나 현재 #자의 안채 와 별채 ,곳간과 뒷간 49칸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마당에는 정승집의 상징인 회화나무( 선비나무,백사목)가 수백년 세월동안 숨쉬고
         있고 옛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극념재(克念齋) 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  회화나무 또는 백사목 **                      

       일제때 세운  명치천황 비          

               *남 여  화장실의 재미있는 표시                                           

           지금은 문화관광부,충청북도, 옥천군 후원으로 정택희님이 새롭게 복원하여 전통한옥,
         생활문화체험관으로
고택민박, 전통혼례,한옥마실,음악회, 고택밀주담그기,약초담그기,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곳간 여기저기 술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옛 선비들이 즐겨 마시던 가양주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택밀주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근래에는 마지막 황손 이석씨와 도올 선생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 한잔 씩 맛을 보며 여행의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 

 수집한  향토 민속유물들을 구경할 수 도 있는 전시관,  효소만들기와 한옥짓기 등을 체험하게 할 수 있는 안채와 전통한옥 민박(전통한옥체험관)을 할 수 있는 별채, 야외공간으로 나뉜다. 주말에는 목단꽃 실내공연장에서 공연도 열린다.

 춘추민속관도 좋지만 옥천은 정지용의 향수 30리의 시발점 옥천구읍이 좋고
 멋진 신세계로의 길은  정지용생가 육영수여사 생가 ,향교 등 볼꺼리가 있고
시인의 시정 세계를 따라가는 여정이기도 한 여행이 좋다. 


여행정보

1> 위치 : 충북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6-3
2> 문의  : 춘추민속관 ☎043--733-4007 , 010-3174-3307
3>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옥천 ic ↔ 7군도 ↔ 수북리방향 2km지점
4> 이용시간 : 관람시간 10:00~22:00 (  관람소요시간 : 약 2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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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 춘추민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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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보길도의 동쪽 끝 막다른 깍아지른 해안 절벽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1689년 제주도로
유배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 했을때 자신의처지를
 한탄한 한시를 해안절벽에
새겨 놓은것이 후세에
"우암송시열 선생 글씐바위"  유적지가 된 곳이다.

우암 송시열선생의 글씐 바위가 있는 지도 모르고
보길도에 왔는데  여행중 여행 안내책자를
들추니
 선생의 유적가 있는 것을 알고 횡재를 만난 여행코스였다.

바위절벽에 암각되어 있는것 뿐이니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실망을 하며 돌아간다. 하기사, 먼길을 걸어 들어 왔는데
주위에 볼것은 글 몇줄 새겨 놓았는데 , 글씨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되어 있으니 그럴수 밖에 없을것이다.

이곳을 재미있게 볼려면 우암송시열선생과 고산 유선도 선생 그리고
4색당파 싸움에 대해 사전에 알고 가면 재미있게 볼수있는곳이다.

앞으로 여행갈 사람을 위해 좀 상세히 적어 봅니다.



우암 송시열 그는 누구인가 ?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는 이곳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은둔생활을 하며 ‘어부사시사’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곳으로,
 정치적 사상이 남인과 서인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이
 보길도라는 섬에 남긴 인연을 어떻게 설명 해야할까?

고산과 우암은 각각 남인과 서인에 속하며 당시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정적관계였다. 또한 두 사람은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었으며 같은 시대인으로는 드물게 80을 넘게 살면서  다섯 임금을
 섬겼는데 두 사람간에 벌어진 치열한 정치적 논쟁은 당시의 극명한 정치적 상황을 말해준다.

나이로 본다면 고산은 선조 20년(1587년)에 태어났고 우암은 선조 40년(1607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산이 20세 더 많은 셈이었다.

   이 글을 쉽게 이해 할려면 아래 4색당파시절의 당쟁구조도를 먼저 보시고 글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것 입니다.



효종이 사망했을 때 윤선도 등 남인들이 3년 상을 주장하는 것에 비해 송시열은 기년 복(1년 상)을 주장한다는 것이다.이때는 1년 기복을 주장한다는 것은 정통 성리학을  부인한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어서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후 남인들은 서인에 대한 반격의 정치공세로 예송논쟁을 제기하고 나서 예송논쟁은 뜨겁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예송논쟁이 무어냐 하면 
상을 3년상으로 하느냐, 1년상으로하는냐는 문제를 놓고 남인 윤선도와  서인 송시열 간에
 정치적 논쟁을 사활을 건 문제였다.
  
인조의 부인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당시 집권당이 서인들이었기 때문인지 서인들이 주장하는 1년 복으로 정리되면서 서인들이 승리하였다.

적통에 대한 논란이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듯이 남인들은 정치적 대 반격을 가하는데 예송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비화시키며 상소를 올린 인물이 고산 윤선도였다.

시간은 흘러 현종이 집권을 하고 있을 때 효종의 비이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 장씨가 세상을 떠나므로 인해 발생한 2차 예송논쟁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남인들로 인해 서인들이 정권에서 몰락하고 남인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
 
이는 철저하게 서인들로부터 탄압 받았던 남인들의 서인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였으며 일종의 만년 야당인 남인이 모처럼 정권을 잡는 것이기도 하였다.

 예전의 정치판이나 지금의 정치판이 조금도 다른것이 없음을 느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후에도 서인들과 남인들은 또다시 집권을 놓고 쟁패를 거듭하는데 서인의 영수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송시열도 숙종 때에는 예송논쟁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막강한 장희빈에게 도전한 우암송시열,그는 성리학자의 외골수 였나?
숙종 시대에는 장희빈이 낳은 아들의 적통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싸운 시기이기도 하였다.
숙종은 서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희빈을 통해 얻은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정하는데 이 원자에 대한 정통성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선 인물이 송시열이었다.

당시 왕권에 대한 정면도전은 죽음을 걸어야 했던 것으로 송시열은 공신에 대한 예우로 죽음은
 면하고 제주도로 유배 길에 오르지만 결국 그는 다시 국문을 받기 위해 올라오던 도중 사약을
마시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제주도 유배 길에 평생 정적으로 상대해야 했던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에 들렀던 것은 우연이었는지는 몰라도 참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없다.
 
송시열은 이곳 보길도의 동쪽해안 암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여든 세 살의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 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 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인데, 초구에는 옛 은혜 서려 이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짓네” 
                                                             ( 위 암각 사진과 아래 비문 참조 )




 고산 윤선도는 현종 12년인 1671년 보길도에서 8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고, 송시열은 숙종15년(1689년) 82세에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둘은 서로 다른 당파로 인해 치열하게 싸우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것을 정치판 숙적이 뭔지 요즙 정치인들 이 글 읽고
좀 느꼈으면 좋으련만...

전남 보길도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의 암각이 이런 사연을 가진곳이다. 그런데 보길도 여행에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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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부산 수영동에는 독도 수호의 선구자인 안 용복이 근무했던 
 경상좌수영이 있던 역사의   현장인 수영사적공원이 있다.
 그 사적공원내에 안용복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그 인근에
 안 장군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안영복 장군은 조선 숙종때 동래출신(현수영구수영동)
어민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수군인 능로군이었다.
당시 왜인들이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라 부르면서
 자주 침범하자, 동료와함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시키고, 일본의 에도막부로
부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 온 사람이다.

 그는 어부였다.  울릉도와 독도 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이다. 국가에서 장군으로 임명된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안영복의
업적을 높이사 장군으로 부른것이다.
 그러니 참다운 장군이라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후세에 오래 기리고자 수영 사적공원에 사당과 동상을 건립하여 추모하고 있다

 

                  

   안영복 어린시절은 ?                                  

   동래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엄하게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부산의 왜관(倭館 지금 고관
    옆)을 자주 출입하면서 일본말을 배워 일본인으로 오해받을 만큼의 일본어 실력을 쌓았고 장성
    하여서는  수군에 들어갔었으나 곧 그곳을 나와 어부로써 생활했다는 정도로 매우 소략하다.  

 

   안용복의 어부생활가 애국심은 자발적인 마음에서 발로된 점 ! 
 오늘 이야기하려는 안용복 역시 동래어민 40여명과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고기를
  잡기 위하여 침입한 일본어민을 만나 이를 힐책하다가 그의 오랜 친구였던 박어둔(朴於屯)과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고 .  이때 호키주(百耆州)태수와 에도막부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이  심함을 밝히고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돌아오던 중 대마도주에게 잡혀서 문서를 빼앗기고 구금되었다. 
 대마도주는 울릉도를 차지하기 위해 다케시마(竹島)문서를 위조하여 같은 해 9월 사신을
 동래에 보내어 안용복을 송환하는 동시에 예조에 문서를 보내 조선의 어민이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독도)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지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울릉도 독도 박물관 앞 에서 안용복장군 추모비  

    

   안용복의 두 번째 일본행은 1696년 봄에 10여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가 마침
   출어한 일본어선을 발견하고 송도(松島)까지 추격하여 그들이 우리의 영토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
   것은 침범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추궁한 때였다. 

  또 추궁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이라는 가짜 관리직으로
 스스로를 밝히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태수에게 남의 영토를 침범한 사실을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낸
 후 귀향하였다. 

 그가 얻어 낸 결과가 훌륭하였고 관리를 사칭한 것도 도리어 애국심의 발현이었다는 사정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나라의 허락 없이 거짓관리행세를 하여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죄명으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고 이전에 대마도주에게 빼앗겨 증명할 수 없었던 문서의 진위여부까지 의심받게 되었다. 

 그러나 남구만의 간곡한 만류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가 귀양을 간 다음해인 1697년 대마도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확인한다는 막부의 통지를 보냈으나 안용복의
 죄는
  풀리지 않았다.              

  안용복의 용기 있는 기개로 울릉도에 대한 일본과의 마찰은 철종 시대까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한 그의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누구의 말도 아닌 본인의 말을 통해 안용복이란 한 어부가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우리의 땅을
   어찌 생각하였는지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안중근의사라고 해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애국ㄱ자의 발로라고 봐진다.  

 “저는 본디 동래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에 갔다가 마침 뇌헌스님 등을 만나서 근년에
  울릉도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고, 또 그 섬에 해물이 많다는 것을 말하였더니, 뇌헌 등이
  이롭게 여겼습니다.

  그 시절의 울릉도와  독도현황을 알수있네요!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영해 사는 뱃사공 유일부 등과 함께 떠나 그 섬에 이르렀는데, 
 주산(主山)인 삼봉은 삼각산보다 높았고, 남에서 북까지는 이틀길이고 동에서 서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산에는 잡목.매.까마귀.고양이가 많았고, 왜선도 많이 와서 정박하여 있으므로 뱃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都)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하러 나왔다. 

  이제 되돌아갈 것이다.’하므로, ‘송도는 우산도(于山島)로서, 그것도 우리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하였습니다.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
 
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을 만나 표류하여 옥기소(玉岐島)에 이르렀는데, 도주(島主)가 들어온 까닭을
물으므로, 제가 말하기를, ‘근년에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울릉도,우산도 등을 조선의 땅으로 정하고,
 막부의 문서까지 받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법이 없어서 이제 또 우리 땅을 침범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자, 마땅히 백기주(百耆州)에 연락하겠다고 하였으나,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제가 분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여 배를 타고 곧장 백기주로 가서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
 가칭하고 장차 사람을 시켜 본도에 통고하려 하는데, 그 섬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어

 맞이하므로, 저는 푸른 비단옷을 입고 검은 갓을 쓰고 가죽신을 신고 교자를 타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말을 타고서
 그 고을로 갔습니다.

저는 도주와 대청 위에 마주앉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아랫단에 앉았는데, 도주가 묻기를,‘어찌하여  들어왔는가?’하므로, 답하기를‘전일 두 섬의 일로 문서를 받아낸 것이 명백할 뿐만이 아닌데,
대마도주(對馬島主)가 그 문서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두세 번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법을
어겨 함부로 침범하였으니, 내가 장차 관백(關白-옛날 일본의 벼슬이름)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두루
 말하려 한다.’하였더니, 도주가 허락하였습니다. 

드디어 이인성으로 하여금 글을지어 바치게 하자, 도주의 아비가 백기주에 간청하여 오기를,
이 글을 올리면 내 아들이 반드시 중한 죄를 얻어 죽게 될 것이니 바치지 말기 바란다.’하였으므로,
관백에게 바치지는 못하였으나, 얼마 전에 지경을 침범한 왜인 15인을 적발하여 처벌하였습니다. 

 이어서 저에게 말하기를,‘두 섬은 이미 너희 나라에 속하였으니, 뒤에 혹 다시 침범하여 넘어가는
 자가 있거나 도주가 혹 함부로 침범하거든, 모두 국서(國書)를 만들어 역관(譯官)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하고, 이어서 양식을 주고 사신을 정하여 호송하려 하였으나,
 제가 데려가는 것은 폐단이 있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한 그의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것을  국역한
 자료( 출처 :독도본부 소식지 2002년 5월호])  

 

                        

                           

    여행정보 
      1>. 위치 :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229-1 (수영사적공원)
      2> 문의 : 051-752-2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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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금강줄기 !  깨끗한 물이 있는 옥천

강과 산이 만들어 놓은 자연에 사람이 있고

사람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여행지.

그 속에 시가 있고  정지용시인이 있다. 

경북고속도로 옥천 IC에서 시내로 진입하여
7번 군도를 타고
 수복리 방향 2km 지점에 생가가 보인다.
옥천읍 하계리에 서정시 <향수>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아담한 초가집을 돌담길을 
돌아 시비가 있다.
그리고 사립문을 들어 서면 우물과 장독대가 있으며
 초가집이라 도 정겹다.
내부에 들어가 
벽에 걸린 글을
읽어보고 옆문을 나서니
 실개천위에 청석 돌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 물레방아가 쉬고 있었다.
 


                                            정지용 -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 때 그 우물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있습니다.
         시인은 가셔도 그가 먹었던 그 우물은 그대로 있으니.....

                                              실개천과 청석 다리
        
            정지용시인의 생가는 옛 우물이그대로 있고 실개천이라는데 물이 없는 실개천이다.    
            아담한 초갓집한채가 있다. 그러나 예전엔 실개천에 물이 흘르고 지즐대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사랍문을 밀고 들어가면 어느새 아련한 그리움의 향수로 빠져들것 같은 곳이다.


         생가 뒤쪽에는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140여편의 시를 남긴 정지용으로서의 삶과 문학정신을 살펴 볼수있다.
문학관은 문학전시실 , 
    문학체험관, 영상실, 문학교실 등으로 되어있고 ,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수있는 영상시설이
      
잘 갗추어져있다.이곳에서 정지용시인의 삶과 문학정신 ,인간미등을 영상 다큐로 공부할수도 있게 되어있다. 

                                       정지용시인과 바람흔적 인증샷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누구인가?를 알아보자.
       우선 1988년 해금되면서 <향수>가 국어 교과서에 실려 거의 모든이가
정지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19
02년5월15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휘문고교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광복후에는 경향신문사 편집국장 과
 이화여전
교수를 지냈다.
       6,25 동란으로 납북되어 사망한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6년 학조 창간호" 커프 프란스"로
       데뷰하고 초기에는 모더니즘과 종교적 경향의 시를 주로 발표했으며 이후 널리
 알려진
        <향수>에서 보듯이 후기에는 서정적이고 한국 토속적인 이미지 시를 발표하였다.

         청록파 3인을 추천하고, 윤동주시인을 한구구시단에 소개하는등  공적이 매우 크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향수> <고향>
<바다> <백록담> <장수산>등 140여편이 있다.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노래 『향수』를 들으면
첫 연을 듣고 나면  실개천 주위로 빠져있고  언덕배기엔  황소가 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시골에 살았다면 누구나 이런 향수를 갖고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연에서는 졸음에 겨운 늙은 ‘아버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도시의 아버지와 시골의 아버지는  완연히 다릅니다. 시골의 아버지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시(詩)가 되고 글이 되는 아버지들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를 부를 때에는 정말 머릿속에 넓은 들에 흐르는 실개천과 누런 소가 그리운 듯이 떠오르는 느낌 이었습니다.   즐겨듣는 노래 향수의 고장 옥천 정지용생가를 다녀온적이 있었습니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경부고속도로 옥천 ic  에서  옥천시내로 진입 그리고 7번군도에서 수복리 방향 2km지점에 위치.
2> 숙소    * 옥천광광호텔 ☎ 043-731-2435

3> 주변 볼꺼리 
    * 육영수 여사 생가
    * 장계 관광단지 와 역사관

4> 문의 : 정지용 문학관 : ☎ 043-730-3588   www. jiyong.or.kr
              옥천군 문화관광과 ☎ 043-730-3081
5>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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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입구 간판에서부터 전(傳)구형왕릉이라며
   전(傳)자를 붙여 쓰고 있다.
  전(傳)자를
   왜 썼을까 싶다.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이 전(傳)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꼭 아니라고 증명된 것도 아닌데 ....
  하는생각이 들었다.
  차장에서 올려다본 돌탑 무덤이 잘 만들어져
   있고 신비롭기도 하였다.

  지리산 골자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건너면
  홍살문이 서있고,
  그 홍살문 우측에는 
  구형왕의 손자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지리산 자락을
 돌며 훈련을 했다는 사대비가
  세워져 있으며  좌측엔 비각이 세워져있다

 

                            왕릉을 빙둘러 쌓은 돌이 제주도 돌담을 연상시킨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고 비석 좌대에는 연꽃.연잎이 새겨져 있고  좌우 양쪽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문무인석(文武人石), 돌짐승, 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등도 배치되어 있으나  
                               근래에 만들어진 느낌이다.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구형왕릉 ,저 능 위로는 나무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도 능 위에서는 똥을 누지 않는다는  그러고보니  돌무더기위에 나뭇잎이나
        새똥은 보이지 않았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것 처럼 신비롭기도 하였다

 

     주차장 맡은 편에는 구형왕의 손자 김유신이 용화향도를 이끌고 지리산 자락을 돌며 훈련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활을 쏘며 연습을 했다는 사대비가 세워져 있다.

 

                    

        산을 다 내려간 입구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시는 덕양전(德讓殿)이 있다.
     덕양전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안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제향(祭香)이 올려지고 있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371에 있는 덕양전은  양왕(仇衡)과 왕비(桂化)양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망향화를 드리는 덕양전이다.

 유래는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가락기원 492년)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王山)
 수정궁(水晶宮)으로 들어온  5년후 돌아가셨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가 전화로 중단되었다가 서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서기 1898년 숭선전(김해수로왕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여   서기 193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어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에 의하여 중건된 곳이다 

 

 구형왕의 릉인지 아니면 그를 기리기 위한 탑인지 아니면 그냥 돌무지인지는 모르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구태여 아니라고 할필요는 없을것 같다. 
       둘레길 출발지를 향하여 또 다시 발길을 돌려 지리산속으로 들어갈것이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번지 
    2.전화번호 : 055-970-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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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지난 1월1일  해맞이를 한일이 벌써 365일이 지났습니다.
작년에는 노무현대통령과 김대중 두대통령께서 가신
해였다고 올해는 늘 좋은일 만 있기를 기원했었는데 ,
크나큰 사건들이 너무 많았던 한해 같습니다.

지난 365일 동안 우리나라엔 큰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1년내내 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4대강사업. 6.2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일도
있었으며, 천안함 침몰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아마 우리의 안보가 너무 안이한게 아닌가 생각케 한
사건이였습니다.   

그러나 바람흔적은 올해 많은 곳을 여행을 했습니다.
지난해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다녔다면
올해는 걷고,버스타고 다니며 전국을 여행했습니다.

4월 옆치기와 15시간동안 완행 열차타고 강원도 정동진까지
다녀왔으며, 충청도여행에서는  익산의세계 대백제전과 대하연의 아름다움에 흠뻑젖었던 일,
그리고 8월 무안 회산백련지 연꽃 축제에서 다성초의선사 생가를 둘러본일,

10월 전주비빔밥축제를 비롯해서, 부안,남원,익산여행 그리고 전남 진도,해남,영암,목포
마지막으로 제주올레길 여행하며 엉또폭포,차귀도에서 해저잠수함여행등
 즐거운 한해가 되었드랬습니다. 











 작년에도 떠 오른 태양이지만  어제의 태양과는 다른 태양입니다.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기에 계획도 다릅니다.

 계획이 다르면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2011년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계획으로 작년과 다르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

 그렇다고 확 바꿀수는 없는 것이죠 . 조금만 바꾸어 살아도 많이 바꿔질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차츰차츰 소망의 빛으로 빛납니다.
         " 201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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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김해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있는
   가락국 봉황동 유지적지가있다 
    
   김해 가락국 봉황동 유적지 정상에 오르니
   넓다란 공터에 가락국 천제단 (駕洛國 天祭檀) 표석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성스러운 곳이였다. 
  남쪽 중앙에 큰 바위가
우뚝 서있다.

  그 바위가 오늘 주제가 된 황세바위 다.

   
           천제단에서 조금 더 오르니  전설을 간직한 황새바위가 있다.  

         황세는 가락국의 9대 임금 겸지왕(숙왕) 때의 인물로 황정승의 아들이다.

       황정승과 친구 사이인 출정승은 각기 아들을 낳으면 의형제를 , 아들과 딸을  낳으면서로
        결혼 시키기로 약속하였으나, 황정승의 집안이 몰락하자 출정은 딸인 여의를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서로 의형제를 맺은 황세 여의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어느날 황세여의에게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는데 , 이 시합을 한곳이  바로 황세바위이다.

                  황세장군과 여의낭자가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해던곳  황세바위

   여의낭자가 책을 읽었다는 독서대   

         여의가 자라면서 점점 여인의 모습을 띠게 되자 이르 수상히 여긴 황세가 거북내
          (지금의 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하였는데 여의는 할수없이 자기가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 약속을 하였다.

 
             그후 신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황세가 왕의 명을 받아 유민공주와 결혼하게되자

              여의낭자는 황세장군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황세 또한 여의낭자를 따라 죽었으며

              ,유민공주는 유민산(지금의 임호산)으로 출가하여(지금의 흥부암) 여승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출정승의 딸 여의낭자를 추모하기 위한 사당 < 여의각>
            

                             출정승의 딸 여의낭자를 추모하는 사당 내에있는 여의낭자 영정
                                                                                         

          출여의 낭자(여의낭자) 정절을 추모하는사당이다.  황세바위 전설에 나오는
          황세장군과 꽃다운 24세의 아릿다운 여의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은  후세
         사람들인 김해
 회현동 주민들이 1973년 이 여의각을 세워 매년 단오날 추모제를
         올리고 있는 곳이다.

 
                                          정절 출여의 낭자 의령단
 

      

                                        봉황산 정상에있는 봉황대 글씨

          봉황대 정상에는 봉황동 유적이 산재해 있는곳이다. 가락국의 마지막왕 구형왕과 형제인
       유민공주가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죽음으로 이룬 사랑을 빌어주기 위해 임호산
으로
         출가하는 모습에서 신라에 넘어가는 가락국의 망국을 보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여행정보

1, 위치 :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
2. 전화:  김해시 관광과  ☎ 055-330-3254
            사적지관리소 ☎ 055-330-3589
3. 찾아가는길 :  김해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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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동쪽 바다끝에 있는 한폭의 풍경화를 찾았다.
포항에서 갈수도 있고, 묵호에서 갈수도 있는곳이
울릉도  섬이다.

동해의 거센파도 때문에  많은 여행객이 나서기를
꺼려하는곳 이라고 들었다. 배멀미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사람이 있지만 , 거센파도가 삶을 골라서
울릉도를 받아 들이는 꼴이다.

날씨가 좋아 쉽게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울끈불끈 치솟은 암벽이
눈앞을 가로 막는곳이 망향봉이 아니겠는가.

망향봉과 향남마을 사이에 선박의 접안시설을  갖추어
항구자체가 커보이지 않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는 항구였다. 


 
  다른 곳을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망향봉에 올랐다.

  도동약수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망향봉정상의 독도전망대에 올게 됩니다.  도동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날씨가 아주 맑은날에는 독도를 볼수있다 합니다.
   그래서 독도전망대라고도 합니다.   

   망향봉에 올라야 울릉도를 한눈에 내려다볼수있고 그래야 울릉도를 전부 봤다고 할수 있다기에
   아니 볼수야 없었지요. 내려다보며 사진으로 담아온것을 보고 설명을 하겠습니다. 



도동약수공원내에 있는 천태종해도사입니다. 절보다는 공원내 약수터까지 올라가서 철분이 많이
 섞인 약수 한사발 하면 흘린땀이 금방 싹 식고 맙니다. 그리고 안용복장군 동상과 비석이 있습니다.




                                                   울릉도 도동항 전경



아래 사진과 위 사진 모두 도동항 좌우 산책로 입니다.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로 가는 왼쪽 절벽으로
 난 산책로가 왕복 1시간정도 걸리니 걷기 좋은 코스였습니다.  암벽으로 난 산책로엔 기묘한 암벼과 동굴을 지나면 용궁횟집도 있고 행남읃등까지  재미있는 산책로입니다.  

도동항에서 왼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울릉도 흑비둘기( 천연기념물 237호)서식지 후박나무 숲이 있습니다. 그리고 울릉도의 새로운 미래항구를 만들고 있는 사동까지 갈수있습니다.





  망향봉 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울릉도의 중심입니다.
 군청,경찰서, 교육청등 모든 기관이 있으니 울릉도의 중심지 라고 봐야죠. 이곳 중심지에는
 신호등도 없고, 주유소도 없고, 교통순경도 없답니다.

 울릉도엔 3무5다(3無5多)가 있다는데 무엇인고 하니 3무는 도둑,공해,뱀이 없답니다
 도둑은 섬이니 도동항만 지키면 나갈수 없으니 아예도둑이 안 생긴답니다. 공해없느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뱀도 없답니다. 엤날어느날 육지에서 뱀 한자루를 몰래가져와서 울릉도에 풀어 \
 놓았는데 그 뱀들이 살지 못하고 자연사 했답니다. 아마 많은 행나무 때문에 향나무 향때문에
 못산다고 합니다.

그럼 5무는 무엇일까요?
향나무, 바람,미인,물,돌 이라고 합니다. 설명은 필요 없겠네요.
     



 독도박물관이 왜 울릉도에 있을가?
 독도에는 사람이 없기때문에 울릉도에 있지요.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한눈에 볼수있게
 각종자료를 전시해두고 많은 사람이 보고 공부하도록 해둔곳이다.

1995년 울릉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은 삼성문화재단이 1997년 건립하여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께서 소장자료를 울릉군에 귀증하여 독도수호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영토박물괸이다.


 
  독도 박물관에는 정기적으로 독도관련 전시를 하고 있다.
 독도여 우리들의 혼이여 ! 가 말하듯이 독도는 우리모두가 눈여겨 보고 지켜야 할땅이다.
  지키기 위해서는 공자가 말했듯이 < 남을알고 나를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나.
 독도에 대해 많이 알기위해 독도 여행객들은 반드시 들려본다고 합니다.


독도박물관 바로 아래 향토사료관이 있다 독도박물관을 들리면 반드시 향토사료관에도 자연
들러보게 되는곳이다.  울릉도 역사를 보여주는 270여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왕 울릉도 여행을 왔으면 울릉도 개척당시부터 이 섬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한번 둘러 봄이 좋다. 편의도구, 가옥구조,및 유적,유물등이 전시되어 있다.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 각석문은 1711년5월 삼척영장 박석창일행이 울릉도 수토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뒷쪽으로 올려다보면 저 멀리 울릉도 성인봉이 보입니다.  성인봉까지 등산을 한다면
 이곳으로 내려 오가나 올라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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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일년에도 몇번씩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우리나라의 동쪽 독도를 운좋게 발을 딛디도 왔습니다.

두번째 독도방으로 운좋게 상육할수있었 다행이였습니다.
날씨가 수시로 변화하여 독도 앞까지 가서도 발을 목 딛고
돌아 오는 사람이 많은 섬입니다.

1696년 안용복장군이 해산물 채취를 나갔다가 일본어부들과
 충돌이 있어 일본으로 잡혀 가기 이전  신라시대부터
우리나라 땅이 일본으로부터 수난을 당한곳이 독도라니.... 

독도에 발을 딛고 보니 과연 일본이 탐낼 정도롤 아름다운 섬이였습니다.
  


동도 선착장에 발을 딛인곳이다. 동도에 있는 경비대,와 등대 오르는 계단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되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올수 밖에 없없다. 위쪽에 올라야 볼만할것인데.....  



동해의 푸른바다와 하얀파도에 씻겨 만들어진 동도는 서도와 15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수심도 10m 이상 깊다고 한다.  동도의 높이는 해발 98.6m이며 정상이 비교적 평탄한 편이라 독도 경비초소와 헬기장,등대가 세워져있다.

면적은73.29m2,둘레2.8km정도로 중앙부는 원형상태로 해수면까지 꺼진 천정굴이 있다고 한다.


 

동도 정상으로 올라기전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는 표석이 있다. 글자 아래에는 동서남북 방위를
 표시하여 방향을 가늠할수있게 해놓았다.

 

서도는 동도 선착장에서 내려 바라만 봐야 되었다.
서도는 해발 168.5m로 뾰족한 원뿔 모양을 하고있으며 동도보다 큰섬으로이루어져 있다.

동도보다 조금 크지만 경사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 정상으로의 접근이 어렵다
고 한다. 괭이갈매기 서식지로  사람의 접근이 되지 않아 아직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인근에서 봐도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서도의 북쪽 해안의 물골바위틈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지표수는 하루 1,000리터 정도로 이곳의
귀중한 식수라고 한다.


 서도에 있는 주민숙소는 보수공사중이였다.
 최초의 독도주민 (최종덕)이 살던 곳으로 지난 97년 새로 건립하였으며, 2006년 2월19일부터
 독도 주민 김성도씨가 현재 이곳에 살고 있다. 주변 조업 어민들의 예기치 못한 풍랑이나  태풍이 발생할때 대피소롤 이용되고 있는 유용한곳이기도 한곳이다
 

삼형제굴바위는 서도 북동쪽 탕건봉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침식작용에 위해서 만들어진 세개의 굴은  머리를 맞댄세명의 의좋은 형제 같은 모습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동도와 서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모습으로 보여 두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한다.  동도에서 보면 촛대바위, 서도에서 보면 전장에출전하는 장군의 긴장된 얼굴모습을 보여 장군바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숫돌바위는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생활할당시 바위에 갈을 갈았다고하는 전설이 있으며, 바위의 암질이 숫돌만드는 돌과 비슷하여 숫돌바위라고 한단다.

독도에 발을 딛고 부터 많은곳을 봤지만그래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못보고 온것도 많았다.
동도의 악어모양의 악어바위,얼굴바위,부채바위,천장굴,독립문바위,한반도바위
그리고 서도의 탕건봉,코끼리바위,들에 대해서는 멀리서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89개위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은 배를 타고 한바퀴 돌아야 볼수있을것 같다.

독도는 어부들의 대피소가 아니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많은새들의 쉼터이자 안식처라고 
하는데 이날은 새한마리 못보고 왔다. 아마 다시 독도에 한번더 오리고 그러는 모양이라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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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11월 날씨가 춥지 않을때 다녀온 울릉도 ,
그때 울릉도 오징어 잡이 선박과 야간에 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어화를 보고 즐거워 한일도 있었습니다.

울릉갔다 올때 마른오징어 한축 사가지고 오세요 하는
애들의 부탁도 있고 해서 오징어에 관심을 가졌답니다.

울릉도 五味중의 한가지에 오징어도 속하니 울릉도
어민들이 신경을 쓰고 잡는데서부터 건조 출하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내는 것이 오징어이기도 합니다.
  

울릉 오징어의 대부분은 저동항에서 출어하고 만선으로
들어오는 곳이기에 아침일찍 이곳에 나가면 들어오는
배들을 볼수도 있고, 배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경매하는 모습
 손질하는모습등 다양한 장면http://valley.egloos.com/tb/travel들을 볼수 있습니다.

특히 울릉저동항은 어업전진기지로 한때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황금기도 있어는데.
오징어도 수온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이니 지금은 그때의 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오징어는 9월에서11월이 성어기라, 이때 잡은 오징어가 제일 맛있는 오징어 라며
 제일 바쁘기도 한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행한 때가 11월이라 제철에  보게된것 입니다. 

 
  오징어를 잡을 땐 특별한 미끼를 쓰는 건 아니고,
  불을 밝혀 놓으면 불빛을 따라 오징어들이
   몰려 들기 때문에 오징어배는 많은 불을 밝히고 조업을 한답니다. 

 
이때 오징어잡는 기계 조상기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로라를 돌려서
 오징어를
잡았다는데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자동으로 만들어진 기계로 조업을 한답니다. 

로라낚시 조상기  한 대당 600만 원 정도 하니 그리 쉽게 다룰 기계도 아니란다. 조상기가 도입되기 전만 해도 어부들이 직접 손으로  돌려야 했기 때문에 20톤 가량 되는 어선의 경우 20명 정도의
 어부들이 배를 타고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어선 한 대에 기껏해야 선장, 기관장, 어부 3명- 4명이 전부라고 합니다.


        출어준비를 마치고 어둠이 깔리면 저 많은 등에서 불빛을 밝히고 조업을 할 선박입니다.




  울릉도 내수전 전망대에 올라 울릉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는 오징어배의 불빛을 보면 또 하나의
 구경꺼리였습니다. 그래서 울릉군에서 이 불빛을 관광상품화하여 저동어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익일 새벽 야간조업으로 만선을 한 오징어 배들이 저동항과 도동항으로 들어 오면 그때부터 
  항구는 시끌벅쩍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경매꾼들, 선주, 경매받기위해 몰려든 상인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육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로 북쩍이는 항구가 됩니다.

  그래서 어시장엘 가면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는 말이 이런 광경을 보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
   되기도 했답니다.    
 

               경매받은 오징어들을 손질하기 위하여 각자 구역에 모아둔 오징어들입니다. 

     
     
    한마리 한마리 오징어 배를 가르고 오징어 내장을 불리하는 작업을 합니다.
    오징어는 눈 말고는 버릴것이 없답니다. 내장은 오징어 내장탕 재료로 쓰기 때문에 별도로 모아
     식당에서 사가지고 간답니다.     


    내장을 제거한 오징어 입니다.  바닷물로 깨끗하게 씻고 순을대에 끼워 말기를 빼고 건조장으로 
     옮겨 갈것 입니다.

                                  순을대에 끼워진 오징어 모습입니다.



     청정지역에서 당일 잡은 오징어를  당일 손질하여 , 청정지역에서 말리니 , 그래서 울릉도
     오징어가
   맛있다고 합니다.  

        이곳 도동항 오징어 건조 덕장은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수천마리의 오징어들이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반건조 오징어도 되고, 완전 마른오징어로 오징어맛객들에게 팔려
      갈것 입니다.



울릉도에서 맛본 오징어들입니다. 도동항 해안도로 바닷가의 용궁이란 횟집에서 살아있는 오징어
 회 한접시 하고, 그리고 마른오징어 한축입니다. 오른쪽은 저동항에서 오징어 손질할때 부산물로 나오는 오징어 내장으로 끓인 오징어 내장탕입니다. 부드러워 술국으로 안성맞춥이였습니다.



 마른오징어를 시실때 울릉도 오징어 구별은 오징어에 붙어 있는 땡기대에 <울릉도산 >라는
 푸른글씨가 있습니다. 이걸 확인하면 다른곳 오징어와 구별할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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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

  비오는날 아침 버스가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버스 주차장에서 우의를 챙겨 입고 카메라를 들고
 내렸지만 행동하기가 참으로 불편한 구경이었다.

  비는 주럭주럭 내리고 있었으나 첫눈에 바라본
 미륵사지는 와  ∼ 넓고 크다는 느낌이 확 밀려들어 왔다.

 멀리 보이는 미륵사지 동탑과 보수해체중인 서탑의 높다란
 건물이 잔디밭과 잘 어울리는 벌판에 위치해 있었다.

 

  문을 지나 들어온 우리들 앞에 나타난 2개의 연못에 이르렀다. 이 연못은 서동이 백제의 무왕이
 되어 왕비와 함께 사자사에 가던중  지금의 미륵산인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

 그 때 못가운데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경배한 후 왕비가  이곳에 절을  짖기를 청하자
 산을 헐고 못을 메워 미륵사를 세웠다.  

 

       연못을 지나 미륵사를 상징하던 2기의 당간지주가 서로 바라보며 우뚝 서있었다.
       당간은 온데 간데 없고 당간지주 만 서있고 박물관에서 본 당간지주 깃발이 생각났다.

       깃발을 바라보며 나라의 흥망성쇠를 생각했던 백성
들의 마음은 어떻했을까 생각되어진다..
       당간지주 주위에는 미륵사지 석탑의 부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하나하나에
       꼬리표가 붙어 복원하기 위하여 해체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미륵사지 삭탑 을 복원하기 위하여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체작업의 마무리공정 인듯하였다. 백제문화의 진수인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석탑이라는 미륵사지 서탑이 전설처름 서 있었던 곳이다.
 
      한쪽에 시멘트 덩어리를 얹은채 견디어 오다 이제 1400년의 베일을 하나 하나하나 벗고
      재 탄생을 하기위하여 휴식하고있다.

     지금 해체하는것은 옛날 백제 석공이 만들었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해체복원
     중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시기에 세워진 최고의 석탑인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이다.  
   백제 기술이 총동원된 석탑은 돌로 만들어 졌지만 목조로 만든 것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어
    그  아름다움이 현세까지 전해져지고 있다.

 석탑해체 과정에서 출토된 금제사리호는 639년 백제 무왕왕후의 발원으로 미륵사 석탑이
 세워졌음을 알리는 귀중한 유물이었다. 높이 13cm의 금제사리호함의 둥근몸체를 감싸고있는
  연화문양에 인동당초무늬,물고기 알 모양인 어자문이 틈새를 채워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구슬은 모두 637점이며 녹색계통이 587저으로 가장 많고 구슬중앙에 실을 꿰멜수있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다양한 크기로 확인되었다.

 

  
미륵사지 동쪽에 있는 탑의 정식 명칭은 동원 9층 석탑, 새것의 느낌이 많이 나는 탑에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색이 다른 돌을 찾아보며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1992년 복원하며 석탑기단석과 탑신석등 남아 있던 부재를 사용하고 소실된 대부분을 제작하여 복원된 탑이다. 탑 1층 내부로 들어가보니 동서남북으로 트여있었다
.

  미륵사석탑 뒷쪽 금당지 , 대웅전을 받히고 있던 돌기둥들이 남아있는 동금당터가 있었다. 


금당지터

                              


    동원9층탑에서 제일 윗부분 에 놓여지는 옥개석

   석등하대석은 연호문 수막새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석등중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의 석등이다.

  미륵사지 박물관으로 출토된 유물19,000여점 을 보관 전시    

  백제의 혼이 깃든 미륵사지와 선화공주에대해 더 자세히 알게된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껏 많이
  남아 있는 신라 사찰만 봐 오다가  백제 사찰의 정교하고 스케일큰 미륵사지를 볼수있어 행복한 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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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 흔적